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오마리 구름따라
     
아리타(有田)에서
오마리 2008년 04월 16일 (수) 01:03:28
오늘날 일본 도기 제작의 중심지인 아리타(有田)는 일본 남단 큐슈(九州) 지방의 동북쪽에 자리잡은 사가(佐賀)현의 작은 읍입니다. 이마리(伊萬里) 항구 가까이에 있는 이곳에서 일본 최초로 자기가 구워진 것은 1600년대입니다. 일본 백자의 새 역사를 만든 도향(陶鄕) 아리타는 도조(陶祖)로 불리우는 조선인, 임진왜란 당시 사가현 영주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에 의해서 끌려간 李參平(이삼평)과 무명의 조선인 도공 1,000여명의 피와 땀, 향수와 한으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 이마리 자기. 일본 도자기의 초기 형태다.  
처음 아리타를 방문한 것은 약 20년 전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워낙 그릇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는지, 디자인이 아름다운 그릇들에 집착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큐슈지방을 순례할 일이 생겼는데, 그곳에서 어머니가 오랜 세월 간직하고 계셨던 아름다운 그릇과 비슷한 자기들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 그릇들의 생산지인 아리타의 지명을 찾아 떠나기로 했습니다.

아리타의 작은 기차역은 아리타의 이름에 걸맞게 작고 깨끗하며 한적하였습니다. 역 주변에 있는 모든 찻집과 식당 가게들은 대개 아름다운 도예로 장식되었거나 생활용품으로 쓰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기분이 좋았던 것은 기차역에 준비된 아리타 관광 안내문에 아리타 도조 이삼평이 ‘조선의 도공(朝鮮の陶工)’으로 조선에서 왔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었던 일입니다. 그 때 물론 이삼평의 기념비를 찾아가 보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으며, 그 이후 아리타는 거의 1년에 한 번은 방문하는 좋아하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잦은 일본 방문에서 더욱 인상 깊었던 일은 도시와 시골 모든 식당 가정에서 자기(사기) 식기들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플라스틱 식기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미 아름다운 전통 식기는 사라지고 가볍고 경망스러운 플라스틱 그릇들이 편하다는 논리 아래 전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때입니다. 편리하기만 하면 전통이건 예술이건 모두 부수고 바꿔 버리는 한국 문화와는 전혀 다른 일본 문화에 열등감을 느끼게 되면서 자존심이 상하였습니다.

   
  ▲ 이삼평을 모신 도잔진자(陶山神社).  
양국 사람들이 더 심하게 대조되어 보이는 현상은 식기문화가 바뀜에 따라 식사예절 문화도 바뀐 것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물론 섬나라 사람들의 소심함, 섬세함이 복합된 민족이어서 조용하고 차분한 언행이 한국인과는 대조가 됩니다만, 사실은 한국 전통 식사문화도 몇 첩씩 되는 반상기에다, 앉는 자리도 상하 주객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예절 면에서는 엄격하였습니다. 그런 전통이 6ㆍ25를 지나며 나일론과 함께 들이닥친 플라스틱 문화가 한국의 전통 식문화를 잠식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은 식문화 뿐 아니라 정신까지 흔들어 버렸습니다.

일본인들은 오랜 세월 자기로 만들어진 식기를 써왔습니다. 그런 연유로 집에서나 식당에서 항상 부드럽고 조심스런 행동으로 식기를 다루고 접대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깨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조심스러움이 행동양식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그들의 생활이 되었을 것입니다. 반면 한국인들은 식당에서도 집에서도 온 천지가 플라스틱 식기뿐이니 어려울 것도 조심할 필요도 없습니다. 깨지지 않으니 마구 씻어도 되고 적당히 게으름도 피워가며 씻게 됩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 사용되는 그릇들은 부엌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또 식당에서 서브할 때는 플라스틱 식기를 텅텅 던지며 식탁 위에 놓고 갑니다. 매사 빨리빨리, 빨리 먹고 나가게 하고 돈 받으면 다음 손님을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어차피 반찬 그릇도 깨지지 않으니 식탁 위에 휙휙 던지듯 서브합니다.

서브를 하는 식당 종업원이나 받는 손님도 천박한 플라스틱 문화가 한국인의 정신을 좀먹는 것을 모른 채 은연중 의식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서브하는 것,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감각이 무디어져 갑니다, 이런 사회에서 자라 온 젊은 세대에게는 ‘조용한 동방예의지국’이 무슨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냐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바로 이런 습관이 해외여행 길에서 예의 없는 한국인이라는 기분 나쁜 평을 듣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름다웠던 백자문화, 일본자기의 원조로서의 자존심을 천박한 플라스틱 인스턴트 문화에 자리를 내어준 후 이제야 그 자리를 되찾으려니 그게 어디 쉽습니까? 지금 한국에서는 여러 업체가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일본의 자기들만큼 디자인 감각, 상품의 질, 종류의 다양성에서 성공적이지 못할 뿐더러 쓸 만한 전통 자기는 가격이 엄청 비싸서 서민들이 쉽게 구입해 일상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 이삼평 기념비  
그에 반하여 일본은 이마리 항구를 통하여 유럽시장에 보낸 아리타 자기가 유럽의 차이나(자기) 생산의 동기 부여를 한 역사와 함께 수 백년 혼신을 다하여 자기문화를 고수해 온 결과 조선으로 부터 들여온 자기문화를 일본화하여 뿌리 내리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들이 생산하는 고가품들에서 한국적 백자 청자 느낌이 나는 종류를 많이 목격할 수 있는데, 그것은 세월이 흘러도 태생적인 원류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한국의 많은 식당들이나 가정에서도 식기문화의 중요성을 알고 자기식기를 많이 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우리 자기에 정성으로 담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은 어느 기쁨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다 아름다운 손끝의 부드러운 서브까지 갖추었다면 더욱 흐뭇하겠지요.

때가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한국에서 전통 문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만, 7년 전 아리타를 방문했을 때 다시 충격적인 일이 생겼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리타 역에서 다시 한 장 집어 읽었던 아리타 관광 안내서에는 이제 더 이상 조선의 이삼평이라는 내용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이삼평 도공이라고만 씌어 있었습니다. 조선을 빼 버린 것입니다. 아리타의 안내서에는 이삼평의 국적은 없었습니다.

어디 국적 없는 조선인이 일본 역사에 이삼평 한 사람이겠습니까. 마음이 심히 언짢아서 언젠가 아리타 시청에 정정요청을 할 생각입니다만, 그는 살아서 고향을 잃었고 수백년 사후에는 그의 기념비 신사와 함께 국적도 없이 일본 아리타에 있습니다. 국적 없는 이삼평, 잃어버린 이삼평의 조선혼,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것을 잃어버린 부끄러운 한국인의 모습입니다.

내 것을 아낄 줄 모르고 남의 것만 좇아가는 마음이 이런 어리석음을 불렀으니 이제는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뿐더러 부지런히 한국미를 재현하고 한국인의 예절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초등 중ㆍ고등 교육과정에 역사와 전통 예절문화에 관한 교과 과목이 있었으면 합니다. 또한 박물관 찾기 등등의 기본 전통 교양과 그에 필요한 예절교육은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5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libero (211.XXX.XXX.216)
일본을 찾을 때마다 그들이 사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걸핏하면 그 일본에 대륙의 문화를 전해 주었다고 자랑하는 우리네 사는 모습과 비교되었습니다. 마쓰모토라는 마을 200년 됐다는 시커먼 초가의 선물가게에서 차 주전자를 산 적이 있습니다. 포장에 이렇게 씌어 있었지요."변하기 쉬운 세상에 변하지 않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 그것도 부러웠습니다.
답변달기
2008-04-17 18:47:25
0 0
오마리 (24.XXX.XXX.49)
예를 들면 관심 밖으로 밀려난 백제인 오오노 야스마로 (일본 서기 저자) 의 무덤이 있는
초라한 신사 도웁기 제 지내기, 비화호 근처의 거의 쓰러져 가는 귀실집사의 신사 가꾸기,
호류지에 걸린 노렌을 벗겨내는 일,고려정(코료쵸)의 구다라데라 궁사 보조 등등입니다만
제 힘으로 가능한 날이 언제 올지, 쉽지않은 일이 마음으로만 끝날지 모릅니다만 누군가의 마음들이 모인다면 가능치 않을까도 생각해 온 저의 꿈입니다.
답변달기
2008-04-17 01:21:08
0 0
오마리 (24.XXX.XXX.49)
제가 일본속의 한국역사 찾기 여행을 많이 하면서 혹은 책을 읽으면서 하고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 역사지의 한국 기록 바로잡기, 또는 황폐해가는 고대나 조선시대의 일본 속의
유적지, 관심 밖으로 버려진 한국인 조상들이 있는 곳들을 우리 손으로 보살피고 가꾸는 그룹을 만드는 일입니다.
답변달기
2008-04-17 01:10:19
1 0
신경호 (168.XXX.XXX.103)
오마리님의 글을 참 깊은 감명을 가지고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에 글을 남길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마는,
저는 학생들과 식사를 할 때, 밥 한 톨 남기지 말고 다 싹싹 핥아서라도 먹어라! 합니다.
제가 가 본 이삼평신사는 참으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인데, 미처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는데, 부끄럽습니다.
진정으로 <우리 것>을 귀히 알고 가꾸고 펼쳐나갔으면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08-04-16 15:48:10
1 0
이석봉 (123.XXX.XXX.58)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죠?
하지만 조상들이 가셨던 길입니다.
식민지로, 전쟁으로, 분단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해내리라고 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고, 언제 자유컬럼그룹 사람들을 대상으로 아리타 기행을 한 번 하시던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답변달기
2008-04-16 09:18:24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