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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이론, 안테나 이론
신아연 2008년 04월 22일 (화) 00:42:24

오늘 저는 따스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후에 오는 훈훈함으로 저마다 가슴 속에 작은 난로를 하나씩 지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4일에 제가 쓴 글 <비데에 대한 단상>에 대해 호주 시드니에 사시는 한 독자 분이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시드니에서 비데 판매업을 하신다는 그 분은 제 글을 통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이참에 시각 장애인이 있는 시드니 동포 가정에 비데를 무료 공급해 드리기로 작정했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보니 공교롭게도 엊그제가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내가 쓴 글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하여 선한 행동을 이끌어 냈다’는 놀라움에 몹시 흥분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독자와 나눈 교감 중에 이보다 저를 기쁘게 한 적은 지금껏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의 선의를 돈으로 따져서 좀 뭣합니다만, 비데가 어디 한 두푼 하는 물건입니까. 호주에서는 대당 우리 돈으로 얼추 30-40만원 가량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드니의 시각 장애 동포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 분의 마음씀이 정말 감명 깊게 다가왔습니다.

글 잘 읽었다며 공감어린 격려만 받아도 기운이 나고 마음이 뿌듯하거늘, 내가 쓴 글이 읽는 이를 감동시켜 행동을 만들어내는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정말이지 신바람 나는 경험이자 글쓰는 큰 보람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몇년 전에 만난 모 일간지 기자 분이 “미담은 ‘주머니에 든 송곳(낭중지추 : 재능이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 ’과 같아서 구태여 신문에 내지 않아도 다 알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쁜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묻히기 때문에 기자들이 열심히 찾아다니며 쓰지 않으면 세상이 모르게 된다” 는 말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저는 좋은 일, 착한 내용보다는 나쁘고 못된 일이 더 자주 신문에 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후속 기사까지 시시콜콜 다루다가 급기야는 천박함을 자초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의 비유가 적절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기자이지만 그 분이 생각하는 ‘기자의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 허구헌 날 흉한 일만 쫓아다닌다면 기자들의 정신과 내면 세계가 얼마나 황폐해질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게다가 혼자만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을 읽는 사람들의 영혼도 같이 시달릴 게 뻔하니 한숨이 나올 일입니다.

최근 혜진이와 예슬이 사건만 해도 그렇지 않습니까.

범행이 보도된 이후 유사한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 속에 들어있는 여러가지 성정 중에서 사악하고 잔인한 면, 천한 호기심이 집중적인 충동질을 받아 주변을 나쁘게 전염시킨 결과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내용을 다루고, 분별력있는 기사를 썼더라면 범죄에 대한 모방 심리를 원색적으로 자극하는 일이 덜 생겼을 것이 아닙니까.

끔찍한 정황을 시시콜콜 묘사하는 기사를 들입다 써댈수록 그 파급력이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악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건 자명한 일입니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의 댓글 기능으로 ‘부화뇌동성 마음 몰이’조차 얼마나 쉽게 벌어지고 있습니까.

하지만 좋은 이야기, 착하고 따뜻한 이야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중간에 어떻게 되었고, 다음 단계에서는 저렇게 되다가 결론은 이렇게 났다’ 하며 아기자기 보도하는 기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듭니다.

사람들이 밝은 기사를 보다 자주 접할 수 있다면 긍정적이고 온화한 성정을 더 자주 꺼내게 될 텐데 말이지요.

아마도 ‘빼어난 재능처럼 미담은 저절로 드러난다’는 ‘송곳 이론’ 탓이겠지만요.

예의 그 ‘송곳 이론’ 대로라면 시드니 독자 분의 미담을 구태여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들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만, 저는 오늘 일부러 주머니에 든 송곳을 자꾸만 삐죽이 내밀고 싶어집니다.

거기에 한술 더떠서 ‘안테나 이론’을 하나 더 세울까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밝고 바른 것을 감지하는 안테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뜻한 글을 쓰면 그 안테나의 기능을 터치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글로 경험했으니, 좋은 글을 많이 쓸수록 그 전파력이 다른 사람들의 같은 정서를 자극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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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o (210.XXX.XXX.253)
세상에 나서 1) 보람있는 일, 2) 돈버는 일, 3) 즐거운 일, 셋 가운데 하나만 건져도 좋은 일이지요. 1, 3번을 한꺼번에 뽑으셨네요.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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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2 09: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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