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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푸드, 출하 뒷이야기
함인희 2022년 07월 20일 (수) 00:00:56

세종시 로컬 푸드 매장의 다른 이름은 ‘싱싱장터’입니다. 누구의 솜씨인지 이름을 참으로 잘 지었습니다. 싱싱장터는 싱싱한 농산물을 주민들에게 신속히 제공한다는 취지에 따라, 채소는 만 하루, 과일은 만 이틀이 지나면 팔고 남은 것을 빠짐없이 수거해야 한다는 규칙을 엄격히 따르고 있습니다.

저희 블루베리도 작년에 첫선을 보인 데 이어 올해도 싱싱장터에 출하를 했습니다. 블루베리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앞서 출하 농가 간담회 자리가 마련된다기에, 저도 주인장을 따라 참석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고간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사회학자의 귀엔 꽤나 흥미진진했답니다.

간담회 첫 안건은 블루베리 500g당 가격을 얼마로 할지였는데, 모든 농가의 가장 뜨거운 관심사답게 설왕설래가 오랜 시간 이어졌습니다. 잠정적으로 대형마트, 도매시장, 온라인 쇼핑몰 가격을 두루 참고해서 가격을 정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기 전 블루베리생산농가협의회 회장님이 묵직한 목소리로 한 말씀을 보탰습니다. “제발 제 살 깎아 먹기는 하지 맙시다. 옆집이 500g당 15,000원에 출하하면 눈치작전 해서 14,000원 라벨 붙이는 이런 짓 좀 하지 말자구요. 이렇게 1,000원씩 내리다 보면 서로 덤핑치다 다 같이 망합니다.”

[사족: 올해는 작황이 예년만 못한 데다 모든 물가가 동시에 올라 처음엔 500g당 20,000원대에 출하하던 농가들이 하루 만에 5,000원~6,000원씩 내리면서 회장님이 우려했던 상황이 재연되고야 말았습니다. 덕분에 세종시 싱싱장터를 찾는 주민들만 땡잡았지요.]

두 번째 안건으로는 매대 자리배치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블루베리는 싱싱장터 측의 배려로 계산대 앞 최고로 좋은 곳에 자리를 배정받았습니다. 한데 제일 먼저 도착한 농가가 블루베리용 매대 절반쯤에 자신들이 수확한 블루베리를 깔아놓고 갑니다. 새벽 6시 출하가 시작되자마자 진열하는 블루베리는 그 전날 딴 것이 분명합니다. 정직하게 그날 따서 출하하는 농가는 최소한 10시 넘어서야 매대에 진열하는 것이 가능하지요.

자리다툼이 가격경쟁만큼 치열하다보니 이번엔 몇 가지 규칙을 첨가했습니다. 1. 평일에는 500g 40팩, 주말(금·토·일요일)에는 70팩까지 출하 가능. 2. 한 농가당 두 줄 이상 차지하지 않기. 3. 당일 12시 이전까지 매대 진열을 마칠 것. 4. 자리를 잡지 못할 경우 싱싱장터 직원에게 도움을 청할 것. (함부로 다른 농가에서 출하한 블루베리 자리 옮기지 말 것!)

뒤를 이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푸근한 인상에 몸집도 넉넉한 70대 아주머님(?)이 손을 번쩍 들며 하시는 말씀. “내가 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어느 집인지 난 알지만 밝힐 수는 없고, 매대에 찰싹 붙어 서서 자기네 블루베리 집어 들고 ‘정말 맛있다’며 판촉하는 것 보았구만. 싱싱장터 측에서 이런 짓 못 하게 해야 합니다.“

회장님이 다시 한 번 나서며 하시는 말씀. “여기 블루베리 출하 농가를 보면 14집으로 나와 있지만 이 중 ooo *** xxx는 시아버지 아들 며느리 관계니 실상은 한 집이여. 한 집에서 여러 사람 이름 올려 3배씩 출하하는 편법을 쓰는 거지. 서류는 갖춰 냈겠지만 이런 꼼수 부리지 못하도록 해야 하는겨. 이런 집도 문제지만 우리가 농장 규모를 빤히 아는데 이미 끝날 때가 지났건만 계속 출하하는 경우도 봤지. 옆집 뒷집 건너집에서 수확한 블루베리에 자기네 라벨 붙여 내놓는 거야. 책상에 앉아만 있으면 이런 상황들 절대로 알 수가 없지. 직원들 바쁘시겠지만 부지런히 현장 다니면서 종이쪼가리론 알 수 없는 실태 파악해야 합니다. 양심에 맡기면 좋겄지만 양심에 털 난 사람도 많은 세상 아닌가.”

누군가 나직한 목소리로 조근조근 하던 말은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곧 묻혀버렸지만 제 귀엔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친환경 인증 붙이면 다 좋은 줄 알지만 그것도 큰 농가만 유리한 제도라. 우리 같은 작은 농가는 관(官)을 상대하기 벅차지. 무농약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친환경 유기농 재배 아닌 블루베리도 있는겨?”

고작 블루베리 한 품목 출하하는 데도 이런저런 사연들이 숨어 있는 걸 보자니 마음이 복잡해 옵니다. 그나저나 로컬 푸드 덕분에 진짜 로컬 푸드가 사라지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습니다. 예전엔 작고 못생긴 푸성귀나 과일은 이웃끼리 서로 나눠 먹곤 했는데, 요즘은 로컬 푸드 매장에 하나라도 더 내다 팔 요량에 아름답던 풍습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하네요. 누구에게나 100% 좋은 일은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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