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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칼럼을 반성하는 칼럼
임철순 2022년 08월 02일 (화) 00:04:02

뉴욕타임스가 7월 21일 ‘내가 틀렸다’(I Was Wrong About…)라는 주제로 실은 유명 칼럼니스트들의 정정칼럼은 국내외에 좋은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등 8명이 자기 글의 잘못된 점을 스스로 밝힌 이 기획은 틀린 걸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언론이 먼저 모범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뉴욕타임스는 “양극화의 시대, ‘에코챔버’(확증 편향)를 확대하는 소셜 미디어 속에 점점 빠져들어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자신이 틀렸을 때 그것을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보여주는 모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습니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 기획에 대해 “크루그먼 교수의 지적 정직함과 엄격함에 감명받았다”는 등의 외신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도 국내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라는, 부러움과 자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그 기획을 보며 40여 년간 언론인으로서 글을 써온 나는 어떤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멀쩡한 사람을 죽었다고 오보를 한 일도 있고, 사실과 다른 추정보도를 하거나 취재원의 언급을 내 입맛대로 지어낸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사에는 기자 이름이 실리지 않았으니 남들이 알 수 없습니다. 개인의 주의 주장을 담은 기명칼럼에 인용한 정보가 잘못됐거나 시각이 왜곡됐거나 보편타당하지 못했던 경우가 문제입니다.

두 가지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일 때인 2004년 3월 5일자 한국일보 ‘메아리’난에 쓴 ‘황우석을 내버려두라’라는 칼럼입니다. 당시 황우석 교수의 명망은 하늘을 찔렀고, 그가 곧 노벨상을 받을 거라거나 과기부 장관으로 기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상임위원이 퇴직 후 2년간 공직선거 출마를 금지한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받아낸 뒤 A정당의 비례대표로 공천 신청을 하고, B정당의 공천 심사를 맡았던 대학교수가 스스로 비례대표 공천 신청을 한 사실 등을 예로 들면서 황 교수는 적어도 그런 몰염치하고 부정직한 짓을 하지는 않을 사람이라고 썼습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가 "신이 시켜도 인간 복제는 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면서 “그를 내버려 두라. 가축도 놓아 먹여야 더 잘 크고 더 건강해진다.”고 글을 맺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지지와 찬사를 보내왔고, 황 교수 본인은 세 번이나 정독했다면서 고마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 어떻게 됐습니까? 불과 1년여 만에 황 교수의 활동은 논문 조작으로 판명되고 그는 서울대 교수직에서 파면됐습니다. 지금 그는 외국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어쨌든 국내에서는 설 땅이 없게 됐습니다. 나는 당시 과학적인 식견이나 자신도 없이 개인적 친분과 호감에 따라 그를 높이 평가하는 글을 썼습니다. 사태가 마무리된 후에는 황우석 지지자들을 줄기세포 광신자들이라고 비판했다가 “앞으로 네 글은 읽지 않겠다”는 반발을 자초했습니다.

황 교수 찬양 글을 쓴 게 끝내 부끄럽지만, 그 뒤 편집국장일 때 기자들이 그의 허상을 밝히는 취재와 보도를 하는 데 편집국 우두머리로서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한 것을 그나마 위안거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일보 주필일 때인 2010년 5월 24일 자유칼럼에 쓴 글 ‘문재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보다 1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놀라울 만큼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응하던 모습이 하도 인상적이고 보기 좋아서 “그가 앞으로 무슨 일을 어떻게 할지 잘 모르지만, 하나의 인상적인 인물형으로 관심 있게 계속 지켜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라고 끝을 맺은 글입니다.

그 뒤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군요.”, “훌륭한 분을 훌륭하게 돋보이게 하셨네요.”, “참, 문재인 씨보다 더 문재인 같은 글”, “저도 똑같은 인상을 갖고 있습니다. 한 번도 직접 접해 본 일은 없지만 신뢰와 존경이 가는 사람입니다.”, “그쪽 커뮤니티의 유일한 사람,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는 댓글을 받았습니다.

“요즘같이 예민한 시기에 (이런 글을 쓰려면) 용기가 필요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노무현에 대해 이야기하시려면 메일을 안 보내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는 댓글도 받았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본인도 글을 잘 읽었다, 고맙다는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뒤 어떻게 됐습니까? 그분처럼 무능하고 부정직하고 편가르기하는 불통 대통령을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놓고 떠나간 뒤에도 퇴임 후 잊히고 싶다는 말과 달리 그는 여전히 현직 못지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글에 대해서 “앞으로 이 사람이 어떻게 될 줄 알고 이런 글을 썼느냐?”는 진심어린 걱정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런 걱정도 물론 없지 않았지만 그가 정치만 하지 않는다면 별문제가 없을 거 같아 안이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 글을 쓴 것을 몹시 많이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나는 칼럼 쓴다는 말 대신 그냥 글 쓴다고 말하면서 쭈뼛거리는 편이지만, 글을 쓰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글은 특히 더 어렵습니다. 두 가지를 예로 들었지만, 이거 말고도 반성해야 할 글은 사실 더 있습니다. 가톨릭 고백성사에는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걸 본받아 말한다면, 이 밖에 내가 알아내지 못한 채 인터넷 공간에 살아서 떠다니는 글의 잘못도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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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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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 (211.XXX.XXX.247)
용기를 내어 쓰신 좋은 글입니다. <엄지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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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2 15:4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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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0.XXX.XXX.9)
감사합니다. 나중엔 또 어떤 글을 쓰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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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2 20:4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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