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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창과 눈곱 그리고 배꼽
노경아 2022년 08월 19일 (금) 00:00:34

동네 마트에 가니 옥수수 열 개가 담긴 소쿠리 위에 9,000원이란 가격표가 붙어 있습니다. “소쿠리째 데려가세요”라는 주인의 말에 얼른 한 소쿠리를 샀습니다. 대나무로 엮은 소쿠리는 명절날 전을 부쳐 놓기에 아주 좋거든요. 가을의 첫 결실인 옥수수 열 개에 소쿠리까지 데려오니, ‘땡잡은’ 기분입니다.

큰 냄비에 옥수수를 넣고 소금과 설탕 녹인 물을 부어 한 시간가량 푹 삶으니 쫄깃쫄깃 맛있습니다. 시골집 마당에 모깃불 피워놓고 멍석에 둘러앉아 먹던 옥시기(옥수수의 강원 사투리) 맛은 아니지만 온 식구가 모이니 금세 먹어 치우네요.

옥수수가 입맛을 돋웠는지 딸아이들이 곱창집에 가자고 제안합니다. 고소한 맛에 원기 회복에도 좋은 보양식이기에 쾌히 응했습니다. 알코올 분해 작용도 뛰어난 곱창에 술이 빠질 순 없지요. 소주 한 잔 따라놓고 곱창을 굽는데, 옆자리 젊은 남녀의 대화가 귀에 꽂힙니다.

여 “오빠, 곱창의 곱은 사람한테도 있어. 어디에 있게?”
남 “곱창이 창자잖아. 그럼 우리 뱃속에 있겠지.”
여 “땡! 곱창은 곱 더하기 창인데, 창자는 창에 해당해. 그럼 곱은? 여기 지글지글거리면서 하얗게 뭔가 나오지. 이게 곱이야.”
남 “(놀란 표정으로) 그래? 그럼, 이 곱이 우리 몸 어디에 있는데?”
여 “곱 들어가는 말을 생각해봐. 그게 답이야.”
남 “음… 눈곱? 그리고… 배곱?”
여 “(당황한 표정으로) 일단 눈곱은 정답. 근데 배곱은 나도 잘 모르겠다. 배곱도 맞나?”

그 순간 가족들의 만류에도 두 사람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나 “배 한가운데 있는 건 곱이 아니고 꼽이에요. 배꼽.”
여 “배에도 곱이 있는 것 같아 고민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눈에는 끈적끈적 고름 같은 곱이 끼지만 배꼽엔 때만 끼잖아요. 그것만 생각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어요.”
여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와~ 고름과 때, 절대 헷갈리지 않겠는데요. 제 친구들한테도 알려주겠습니다.”

경쾌한 그녀의 말처럼 곱창은 ‘곱+창’의 형태로 소나 돼지의 작은창자를 뜻합니다. 곱은 예전엔 ‘기름(膏, 기름 고)’을 일컬었습니다. 곱창이 불판에서 익어갈 때 지글거리며 고소한 냄새가 나는 것도 다 기름기 때문입니다.

눈곱은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잘 낍니다. 눈병뿐만 아니라 감기에 걸리거나 피곤한 날,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아침엔 눈이 안 떠질 정도로 눈곱이 끼기도 합니다. 반면에 배에 탈이 났을 때 곱이 나오는 이는 없습니다. 만약 체했는데 배에서 진득진득한 액이 나온다면 그야말로 큰일입니다. 배꼽은 탯줄이 떨어지면서 생긴 자리입니다. 이제 눈곱/눈꼽, 배곱/배꼽을 단번에 구분할 수 있겠지요.

북한에선 곱창을 ‘곱밸’이라고도 말합니다. ‘밸’이 낯설다고요? 비위에 거슬려 아니꼬울 때 ‘밸이 꼴리다’라고 하잖아요. 배알의 줄임말인 밸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처럼 창자의 속어인 밸(배알)은 구겨지고 꼬인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곱창이 맛있는 계절, 가을입니다. 입추도 말복도 지났으니 곧 귀뚜라미가 “차르르르” 울어대겠네요. 가을을 시샘하는 더위가 한동안 낮엔 기승을 부리겠지만 아침저녁으론 선들바람이 새 기운을 일으킬 것입니다. ‘어정 7월 건들 8월’이란 옛말이 시간을 헛되이 쓰지 말라는 경고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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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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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빈 (14.XXX.XXX.141)
글 잘 읽었습니다.
지난 봄에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한 해장국집에 갔더니, 필자님이 말씀하신 곱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배우고 왔습니다. 오늘 이 글을 읽으며 다시 복습했습니다.
마당에 누워 옥수수 따 먹으며 밤하늘을 바라보던 때가 그립습니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옥수수를 설탕,소금물에 삶지 않고 그냥 쪄서 먹지요. 아마도 금방 따서 쪄먹는 옥기시는 덜 영글고 덜 마른 거고, 마트 판매용은 완전 성숙한 거라 딱딱하고 육즙이 없어서 그런 거 같습니다.
근데 옥수숫를 가을 결실로 보기에는 좀 이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옥수수는 7~8월에 따 먹고, 9월부터는 마른 옥수수를 따서 씨앗으로 보관하거나, 뻥튀기용 혹은 사료용으로 썼던 기억이 나네요~
건강한 여름 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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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0 10:29:38
1 0
노경아 (116.XXX.XXX.129)
생물학을 전공하신 대장님께선 옥수수에 접근하는 방법도 남다르십니다. 갑자기 경기 북부 산행 때의 즐거웠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취나물 사태. ㅎㅎㅎ
9월 초 탁족만리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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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1 14:42:55
0 0
정병용 (220.XXX.XXX.57)
새로운 지식 감사합니다.
건행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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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9 18:49:15
2 0
노경아 (116.XXX.XXX.129)
지금은 방학 중이시지요?
늘 공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무척 존경스럽습니다.
가을엔 얼굴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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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1 14:46:05
0 0
정병용 (220.XXX.XXX.57)
가을이 기다려 집니다
행복 하세요~`
답변달기
2022-08-24 18:00:19
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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