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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에 꽂히다
정달호 2022년 10월 12일 (수) 01:28:51

해군 시절 바다를 품고 지내서 그런지 섬에 살면서 바다를 볼 때마다 반가움과 함께 어떤 아스라함이 입니다. 바다뿐 아니라 바다를 연상케 하는 것들을 볼 때도 살가운 마음이 듭니다. 오래전 이 난(欄)에서 바다에 대한 동경과 향수를 타륜에 빗대어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타륜에 꽂히다', 2013. 10. 8). 요즘엔 바닷가를 걷거나 차를 타고 섬을 돌아다니다가 등대에 꽂혔습니다.

등대는 서양 말로는 '라이트하우스(lighthouse)' 또는 '파로스(pharos)'로 불립니다. 라이트하우스는 등대를 모습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지만 파로스는 사실 등이나 빛과는 관련이 없는 말입니다. 파로스라는 말은 인류 최초의 등대인 알렉산드리아항 파로스 섬 등대로부터 연유합니다. 등대가 세워져 있던 섬의 이름이 세월을 겪으면서 등대 자체를 가리키게 된 것이죠.

십수 년 전 이집트에서 근무할 당시 카이로를 벗어나 알렉산드리아에 갈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고대부터 서양과 동양을 잇는 항구이자 헬레니즘 문명의 본산이었던 지중해의 남쪽 연안 도시죠. 고대 이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박물관과 알렉산드리아 등대(Pharos of Alexandria)로 유명한 곳이자 현대에 와서는 수에즈 운하의 북단을 이루는 항구 도시입니다.

무엇보다 그 등대가 궁금했습니다. 중세에 여러 차례 지진으로 붕괴되어 물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 흔적이라도 확인하고 싶어서 등대 옛터를 찾았습니다. 등대가 부서지면서 수장되고 남은 돌들마저 15세기 방어용 성곽 축조에 사용되어 옛 등대의 흔적은 모두 사라졌지만 장대한 문명의 역사를 돌이키며 감회가 없을 순 없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등대 상상도'  

프톨레미 왕조 첫 2대에 걸친 12년간의 공사 끝에 완성된 파로스섬 등대는 높이가 약 100미터(기록에는 103미터 또는 118미터로 다양하게 나온다고 함)에다, 기반 축대의 가로 세로 폭이 30미터나 되었다고 합니다. 등대의 맨 윗부분에 낮에는 햇빛을 반사하도록 큰 거울이 설치돼 있었으며 밤에는 용광로에서 나오는 불빛이 주위를 비추었습니다. 지붕 꼭대기에는 포세이돈의 상(제우스 상으로 기록돼 있다고도 함)이, 건축물의 각 귀퉁이에는 트리톤(Triton, 포세이돈의 아들)의 상이 세워져 있었다니 그 위용을 짐작하고도 남겠습니다. 당시 최고도(最高度)의 건축물로서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속했던 만큼 이븐 바투타를 비롯한 각지의 여행가들이 찾아와서 살펴보고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등대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뜻밖에도 최근 김훈의 소설 '하얼빈'을 읽던 중 이토 히로부미를 통해서였습니다. 책 벽두에 1905년 을사늑약 후 이토가 영친왕을 데려가 메이지 천황에게 소개하고 나서 자택에 들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의 침실에 알렉산드리아 등대 모형의 수면등이 있었는데 이토가 일부러 주문제작한 것이라 합니다. 일본 근대화에 매진한 이토는 알렉산드리아 등대에서 영감을 받아 인류의 문명이 신호 체계를 중심으로 변천되고 있음을 감지하였던가 봅니다. 이토는 실제로 러일전쟁에 대비해 한반도 해안에 많은 등대를 짓도록 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인 월미도 등대도 이토의 지시로 세워진 것이라 합니다.

얼마 전 자유칼럼에도 등대 이야기가 실렸는데 서귀포 해안에 서로 떨어져 서 있는 하양 빨강 두 등대에 얽힌 어떤 부부의 감동적인 사연을 담은 것이었습니다(김수종, 2022. 9.15자 칼럼 참조). 그 스토리를 읽을 무렵, 사실 저도 제주의 어떤 한 등대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제주도 서북부 사라봉에 서 있는 '산지등대'로 크고 작은 두 개의 하얀 등대가 나란히 세워져 있어 특이합니다. 제주항 부두를 내려다보며 먼 바다를 향해 서 있는 모습이 하나의 풍경화(seascape)처럼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몇 달 전에 처음 가보고 그 등대가 있는 바닷가 풍경이 그리워 두어 번 다시 찾기도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산지등대에 마음이 꽂혔던 것이죠.

   
  '산지등대'  

한 곳에 등대가 두 개 세워져 있는 것은 흔치 않습니다. 작은 등대는 일제 때인 1919년 무인 등대로 세워졌다가 1999년부터 새 등대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80여 년간 항해 표지로 기능한 그 역사를 기린다는 점에서 등대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훨씬 더 높은 새 등대는 애초에는 유인 등대였다가 수년 전부터는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한 무인 등대로 바뀌었습니다. 유인에서 무인이 됨으로써 종전의 등대지기 공무원이 쓰던 공간은 지금 카페로, 부대 시설들은 작은 도서실과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등대 뒤편 커다란 팽나무 주위로 잘 조성된 잔디밭에서는 수시로 야외음악회가 개최되는데 동네 어르신들의 기악 동호회 연주도 열리고 젊은층 음악가들도 자주 와서 버스킹을 하여 방문자들이 많이 찾는 지역 명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등대를 '음악이 흐르는 등대'로 부르기도 하지요. 짙푸른 망망대해를 뒤로하고 멋진 하얀 등대 둘을 무대장치로 해서 펼쳐지는 콘서트나 버스킹을 상상해보십시요. 커피 한 잔을 들고나와 음악을 즐기는 분들은 바다와 등대가 주는 막연한 향수에 젖을 것입니다. 어쩌다 뱃고동 소리까지 들린다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저절로 흥얼거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걷거나 차를 타고 제주 일대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등대를 만나게 됩니다. 하얀 등대도 있고 빨간 등대도 있습니다. 항만 부근의 하얀 등대는 오른쪽으로, 빨간 등대는 왼쪽으로 돌아서 들어가라는 표지라고 합니다. 산지등대처럼 높은 곳에 세워놓은 큰 등대들은 선박이 멀리서도 자기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배들이 저 등대들에 의지해 먼 바다에서 뱃길을 찾아 항구로 안전하게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등대가 참 고마운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등대 외에도 위험물을 표시하기 위해 암초 위에 세운 비컨(beacon), 바다 위에 부유하면서 경계를 표시하는 부이(buoy) 등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한 다른 장치들이 있습니다. 비, 눈, 안개로 시야가 가릴 때는 등대에서 소리나 전자 신호를 보내서 뱃길을 찾도록 하기도 합니다. 미국을 일컬어 민주주의의 비컨(Beacon of Democracy)이라고 할 때처럼 비컨은 향해 나아가야 할 목표를 은유하기도 하죠. '내 삶의 등대로 삼는다'고 할 때의 등대도 비슷한 은유입니다. 굳이 바깥에서 등대를 찾지 말고 마음속에 가물거리는 작은 불빛을 등대로 삼으라는 말도 있습니다. 등대는, 바다에서 어두운 뱃길을 밝혀 주듯이 삶이라는 항해에 서도 중요한 길잡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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