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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영옥이와 구절초
노경아 2022년 10월 25일 (화) 00:00:26

“어머나~ 이기(이게) 뭐이나(뭐야). 구절초 꽃차네. 이기 갱년기 여자들한테 그래 좋단다. 우리 이거 사서 잘 우려먹자. 어렸을 때 우리 동네 뒷산이랑 집집마다 담벼락 밑에 개락이었는데(많았는데). 야(얘)들은 희한하게 마카(모두) 모여 있다니까. 이기 이래 몸에 좋은지 우타(어떻게) 알았겠나.”

몇 년 전 가을, 전북 익산 ‘천만송이 국화축제’에 갔을 때 친구 영옥이가 한 말입니다. 삼척에서 나고 자란 친구라 언제 만나도 강원도 사투리가 참 정겹습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안도현의 시 ‘무식한 놈’입니다. 시인의 자책처럼 저 역시 가을에 피는 꽃은 무조건 ‘국화’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무식쟁이입니다.

   
  한곳에 모여 피는 구절초. (풀지기 박대문 님 제공)  

그래도 그날 영옥이 덕분에 구절초만큼은 확실히 알게 됐습니다. 몇 년 동안 구절초 차를 마시며 꽃모양을 찬찬히 뜯어보았거든요. 올가을에도 구절초 꽃차 마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습니다. 꽃잎 서너 개를 투명한 찻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구수한 향과 함께 꽃잎이 활짝 피어납니다. 연노랗게 우러난 차를 한 모금 넘기면 생기가 솟아납니다. 꽃과 교감이라도 한 듯. 이 특별한 여유는 나이에서 오는 것일까요.

구절초는 몸이 찬 여성(특히 갱년기)에겐 그만입니다. 저야말로 몸과 마음이 말라가는 나이가 됐는데, 꾸준히 차를 마시니 삶이 푸석거리지 않습니다. 손발과 아랫배(별걸 다 말하네)는 혈기 넘치던 20·30대 때보다 지금이 오히려 더 따뜻합니다. 구절초가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더니 참말입니다.

구절초는 좋은 잠을 자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잘 말린 꽃송이를 베개 안에 한 줌 넣으면 은은한 향기에 마음이 편안해져 한순간 까무룩 잠이 듭니다. 동의보감에도 “국화를 넣은 베개를 베면 눈이 맑아지고 어지럼증이 사라진다”고 기록돼 있다니 믿어볼 만합니다. 어떤 이(그의 체질이나 기전은 잘 모르지만)는 구절초 꽃베개를 베고 자니 탈모도 완화됐고 흰머리도 검은머리로 변했다고 자랑하는데, 좀 과장된 말 같습니다.

가만 생각하니 구절초는 어릴 적 우리 집 방문 창호지 속에도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강원 산동네에선 시월이면 추위에 대비해 구멍 난 창호지를 뜯어내고 다시 두세 겹 발랐는데, 우리 아버지와 엄마의 작업은 특별했습니다. 문고리 주위를 구절초 코스모스 달리아 꽃잎들로 수를 놓았거든요.

햇살 좋은 날, 꽃잎 넣은 방문들을 담벼락에 세워놓고 하늘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아련합니다. 창호지에 발린 밀가루 풀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찬찬히 부채질하던 아버지 옆에서 오남매가 입으로 후후 불며 까르르 웃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생각난 김에 엄마한테 전화를 하니 “니들 아부지가 참 섬세했지. 뜰에 핀 꽃송이가 망가질까 조심조심 따서 책갈피에 넣어 말리고. 문에다 꽃 모양대로 붙인 것도 내가 아니고 니들 아부지였어. 해마다 내 손톱에 봉숭아 물도 들여 줬었는데…” 합니다.

춥고 검은 광산촌에서 살았지만 어린 시절이 빛났던 건 결이 고운 부모님 덕이지 싶습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법을 배웠기에 지금도 큰 욕심 없이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무서리에 시들어도 온화한 기품을 잃지 않는 구절초처럼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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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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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규 (182.XXX.XXX.152)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문득 어려서 자란 고향마을, 그 시골풍경이 눈 앞에 떠오릅니다.
아련한 추억을 소환할 기회를 주어서 글쓴이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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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5 16:58:12
1 0
노경아 (116.XXX.XXX.129)
따뜻한 마음으로 고향 마을에 다녀오세요.
가을이 참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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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5 18:23:26
0 0
정병용 (220.XXX.XXX.57)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법을 배웠기에 지금고 큰 욕심 없이 웃으며 살고 있다고요? 공자같은 말씀 참 좋습니다.
근디 "벌써 몸과 마음이 말라가는 나이가 되었다고요?
보통 몇살부터 몸과 마음이 말라 가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8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몸과 마음이 말라가는 것을 못 느끼고 있는데요 ㅎㅎ~~
항상 건행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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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5 16:57:06
1 0
노경아 (116.XXX.XXX.129)
제 생각에 선생님께선 몸과 마음이 마를 날이 없을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공부하시고 늘 열정과 즐거움으로 생활하시니, '영원한 청년'입니다. 마르지 않는 삶을 위해 저 역시 노력하겠습니다. 또 하나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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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1 16: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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