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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은 어머니, 그리고 미미 <상>
오마리 2008년 05월 17일 (토) 03:47:21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장례식을 치른 후에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나도 병과 싸우느라 힘겨운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내 마음을 배려했는지 돌아가시고도 몇 달 시간이 흐른 뒤 나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내 또래 한국인의 어머니가 모두 그러하셨듯이 어려운 근대사회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오신 점은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그 시절에 키가 167cm에 눈이 크게 쌍꺼풀 진 서구적 여성으로 성악을 전공하셨습니다. 처녀 때는 이름 첫 글자의 ‘미’자와 성씨의 첫 글자 ‘미’를 따서 친구들이 “그대 이름은 미미”라고 놀리곤 했답니다.

   
키가 큰 데다 눈까지 너무 커서 오히려 그것이 부끄러워 뒤로만 숨었다는 신여성으로, 아버지와는 연애결혼을 하셨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만나 양가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신 어머니는 낯설고 물선 힘든 시댁에 와서 장손의 며느리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집안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어머니는 백제계 일본인이었습니다. 일본에서 백제 왕족의 후손들의 성씨인 미마쓰(三松)라는 성을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면서 한국 성으로 바꾸셨고 스스로 백제인임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셨습니다. 중년 이후에는 굳이 서울 거주를 마다하시고 백제 땅 전라도의 호숫가, 그녀가 오래 가꾼 산정의 집에서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집 옆 호수의 전경이 보이는 자리, 아름드리 동백꽃이 둘러싸인 유택으로 떠나신 것입니다. 슬프게도 그녀의 친정 가족들은 아무도 없는 모국이자 이국에서, 자신의 당대 후손 앞에서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일제시대부터 교사를 하시더니 6ㆍ25 이후에는 사업으로 방향 전환을 하셔서 매일 바쁜 시간을 보내셨지만 집에 오시면 주부로서 흐트러진 자세를 보인 적이 없었던 모범 주부였습니다. 집안일 하는 언니도 싫어하는 노망나신 할머니의 치다꺼리를 불평 한 번 없이 하시던 모습이 그림같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참으로 여성스러우면서도 강인하고 자존심이 강하시어 자식들 앞에서, 특히 오빠들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시던 분입니다. 나는 어머니의 눈물을 아마 세 번 쯤 본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가 저희들에게 주신 계명은 사업가답지 않게 아주 여성적인 것입니다. 특히 결혼 후의 지침입니다. 자다 깬 얼굴을 남편에게 보이지 말고, 특히 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 모습 보이지 말며 세수하고 꼭 화장을 간단히라도 마친 모습으로 남편 앞에 나설 것, 아무리 바빠도 미장원에 들러 머리 손질을 정갈하게 할 것, 며느리들과 딸들에게 자주 이 말을 하시는데 항상 결론은 이렇게 끝내셨습니다. “너희들 남편 바람 피우면 내게 와서 하소연하지 마라. 남편이 바깥으로 도는 것은 아내에게도 문제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 가족들이 방문하는 날이면 꼭 곱게 단장하시고 옷도 화사하게 입고 자손들을 기다리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처럼 살았느냐고 물으신다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자다 깬 얼굴 보인 적도 많고 부스스한 머리 모습을 보인 적도 있고 단장도 제대로 못하고 아침상에 남편과 앉은 적도 부지기수이니까요. 그러나 한 가지는 지켰습니다. 아침 밥상 앞에서와, 부엌 들어가기 전에 꼭 세수하고 손은 씻고 머리는 뒤로 묶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타계를 알려 준 언니는 슬픈 소식에 목을 놓고 우는 나에게 위로한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 너무 슬퍼 마라. 어머니의 장례식에는 꽃들이 오백 개도 더 들어왔구나(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했음). 너무 많아 셀 수도 없었고 병원에 둘 수도 없어 운구행렬 나가는 길거리 밖 멀리멀리까지 더블로 줄 섰었다. 호상이야. 그런 장례식에 엄마는 얼마나 행복하셨겠니?“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뚝 그치고 끔찍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아이고, 내가 죽은 다음에는 꽃다발이 몇 개나 들어올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갑자기 내 사후에 올 꽃다발 수의 걱정거리로 변한 것입니다. 물론 나는 매사가 어머니보다 못한 딸이었음을 자인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세어 보니 꽃다발 가져 올 사람이 몇 사람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나의 초라하고 외로운 장례식 광경이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곧 육십에 이르는 나이인데, 나는 나의 개인적인 문제점을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첫 번째 치명적인 문제점은 사교성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니 일이 아닌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친교에 아주 서투르고, 나중에는 서투르다 못해 어색한 행동도 하게 됩니다. 그 서투름을 감추려 하다 보면 과장되고 불안한 모습이 되어 저의 참모습을 보이지도 못하고 뜻하지 않은 실수를 하여 또 후회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마음에 없는 말로 누군가를 기쁘게 부추겨 주는 일은 정말 못합니다. 세 번째는 타인의 의견은 경청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지만 싫고 좋음을 섞어서 잘 소화하는 지혜가 부족합니다. 네 번째는 몰려 다니기보다는 홀로 있어야만 편안해지는 개인주의적인 요소가 많으니 많은 친교를 맺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 개의 꽃다발을 받지 못한다 하여도 나의 삶에 대한 인과응보인 것이니 나 자신의 탓입니다. 하늘 위의 내 영혼이 텅 빈 나의 장례식을 내려다 보고 쓸쓸해 하겠지요. 그러나 몇 명의 심우(心友)가 흘려주는 눈물과 기억이 있다면 그것은 수백 개의 꽃다발보다 행복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어머니의 장례식은 저에게 많은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아마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장례를 통하여 막내딸의 단점을 깨닫게 해 주고 싶으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글쓴이 오마리님은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투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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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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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99.XXX.XXX.82)
심우의 눈물과 기억이 있다면...선생님 선생님 제인생을 반성하고 죽음후의 저도 보았습니다.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살아야하겠슴니다. 좋은글 많이 많이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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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12:49:29
0 0
hao2joong@naver.com (211.XXX.XXX.129)
2008-05-17 13:43:29
한 개의 꽃다발을 받지 못한다 하여도.......그러나 몇 병의 심우가 흘려주는 눈물과 기억이 있다면......이 대목에서 저는 맥을 놓고 말았습니다. 참 많이도 움직이고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저에겐 단 몇 개의 꽃다발도, 단 한 두명의 심우도 없지 않는가.......헛되고 헛되도다......그것도 인과응보라니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훌륭하신 글, 고맙습니다. 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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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07: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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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ung0327@hanmail.net (211.XXX.XXX.129)
2008-05-17 10:40:36
"나의 개인적인 문제점"이라는 분석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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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9 07:43:36
0 0
libero (210.XXX.XXX.253)
너무 걱정마세요. 자유칼럼 독자들 가운데 팬들이 적지 않으니까. 그래도 서둘지는 마시고 아주 천천히 쉬었다 가시지요. 어느 시인처럼 아름다웠노라 회상하시면서.
답변달기
2008-05-17 11: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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