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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틀린 건 그때도 틀린 겁니다
박상도 2023년 06월 15일 (목) 00:04:55

가끔 우연히 오래된 영상을 보게 되면 "아, 그땐 그랬지."하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그때는 불가능했고 또 그 반대로 그때는 당연한 일들이 지금은 상식 밖의 일인 경우도 많습니다. 70년대 시내버스 영상을 보면서 흠칫 놀란 장면이 있었는데, 버스 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꿈도 꾸지 못 할 일인데 그때는 버스 안 흡연이 당연한 세상이었던 겁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기억이지만 고속버스 손잡이에 재떨이가 있었고 비행기에서도 흡연석이 따로 지정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필자가 방송사에 입사한 1990년대만 해도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임신한 여성 직원이 있어도 그 옆에서 담배를 피웠으니 지금 생각하면 야만의 극치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에도 여성 직원들이 사무실에서 흡연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했던 것 같은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남성 중심의 직장 문화도 한몫했지만, 흡연에 대한 사회의 통념이 바뀌기 전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도 격세지감을 느끼는데,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어떠했는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59년 전인 1964년에 있었던 ‘혀 절단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그때의 대한민국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아니었구나’였습니다. 시사IN에 소개된 사건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964년 5월, 당시 만 18세였던 최말자 씨는 자신에게 성폭행을 시도하던 노 아무개 씨의 혀를 깨물었고 이 일로 노 씨의 혀 1.5센티미터가 잘렸다. 이 사건으로 최 씨와 노 씨 모두 구속이 되었는데, 강간미수범인 노 씨는 혀가 잘려 벙어리가 된 점을 참작하여 구속이 해제되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성폭력 피해자인 최말자 씨는 중상해죄로 6개월 동안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노 씨보다 더 높은 형량인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최말자 씨는 이 사건에 대해 2020년 5월에 자신의 행위가 정당방위였음을 주장하며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2018년에 있었던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 고발을 보고, 일흔넷의 노인이 되어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깨기 위해서는 기존 판결을 뒤엎을 만한 사실관계의 변경이나 수사와 판결에 관여한 공무원의 위법을 입증해야 하는데, 60년이 다 돼가는 사건의 자료가 상세히 남아있지도 않을 것이고 당시 판결을 했던 판사나 기소했던 검사가 아직 생존해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결국 재심 신청과 항고 모두 기각되었고 대법원에 재항고를 하여 이제 재심 개시 신청에 대한 대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재심 개시의 판단은 시대가 바뀌어 상황이 변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때의 판결은 그때의 법리와 시대상황에 따른 것이니 같은 사건을 지금의 잣대로 다시 판단할 수는 없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랬으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라.”라는 말처럼 옹색한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최말자 씨는 그때도 틀렸고 지금도 틀렸다는 것이고 당시 수사에 불법 구금 같은 위법성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말자 씨의 얘기를 토대로 사건의 전개 양상을 살펴보면 몇 군데 전환점들이 보입니다. 우선 혀가 잘린 남성과 그 가족의 당시 행동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을 갖기는커녕 키스를 하다가 혀가 잘린 일로 인권상담소를 찾아서 억울하다고 한 점입니다. 인권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자인 최 씨가 찾아가야 하는 것 아니었나요? 가만히 있는 남성의 혀를 잡아 빼서 자른 것도 아니고 성폭행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피해자를 몇 번이나 땅에 쓰러뜨리고 강제로 자신의 혀를 밀어 넣어서 자초한 일이 아니가요? 최말자 씨는 넘어질 때의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행사한 자기보호의 행동으로 의도치 않게 상대의 혀를 자른 것으로 얘기합니다. 어찌됐든 상대는 혀가 잘렸지만 그 과정과 결과 모두 피해자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초래한 원인에 초점을 맞춰야지 ‘혀가 잘렸다’는 결과에 사건의 초점이 맞춰지니까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부산일보> 기사의 제목이 ‘키스 한 번에 벙어리’ 였습니다. 기자들을 교육할 때, 우스갯소리로 “개가 사람을 무는 건 기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은 기사가 된다.”는 얘기를 합니다. 개가 사람을 무는 건 흔한 일이니 사람이 사망하는 경우가 아니면 기사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무는 일은 희귀한 일이니 기사로서 가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논리로 당시 기사를 분석하면 남성이 여성을 강간하는 일은 흔한 일이라 기사로서 가치가 없는데 강간을 하던 중 여성의 반격으로 혀가 잘린 남성의 이야기는 희귀한 일이니 자극적인 기사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논리를 확대하면 당시 우리나라가 영화 살인의 추억에 나온 대사처럼 강간의 왕국이었다는 뜻인데, 정말 그랬는지 그때를 살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당시에 남자들이 여자들을 희롱하는 행위에 대해 사회적 분위기가 꽤 관대했던 것 같다는 추론을 해봅니다. 당시 부산일보의 기사 내용만 보더라도 “총각이 좀 뻣나기로서니(어긋났기로서니)” 혀를 깨물어 말을 못하게 만들었다고 쓰여 있는데 범죄행위에 대해 저렇게 대수롭지 않게 본 그 사고의 틀이 그 시대를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검사가 공판에서 최 씨에게 한 질문들 - “으슥한 벌판까지 혼자 따라간 이유는?” “키스 할 때 혀를 사용한다는 것을 아느냐?” “노 씨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느냐?” - 과 변호인이 “노 군이나 최 양 모두 다른 처녀 총각과 혼인하기 어려우니, 본인이 팔 걷고 나서서 양측 부모들로 하여금 한 번 더 마음을 돌리게 해서 혼인 중매에 나서겠다.”는 망언이 방청객들의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당시 우리 사회가 한 개인의 삶을 짓밟는데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성의 인권이 어떠했는지도 엿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희대의 카사노바 사건인 박인수 사건의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한 선고에서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만 봐도 헌법에 보장된 평등이라는 개념이 당시에 얼마나 작위적으로 해석되고 있었는지를 알려줍니다. 물론 이 판결은 2심에서 뒤집어졌고 혼인빙자 간음죄는 한참 후인 2009년에 폐지되었습니다. 

최말자 씨가 재심을 청구한 것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판결 이상의 큰 울림을 우리 사회에 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그런데 정말로 많이 다른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진실은 아직도 힘과 권력이 있는 편에서 만들어지는 양상이 있고, 최말자 씨 경우처럼 야만적이지는 않지만 교묘하고 더 치밀하게 약자의 삶이 파괴되는 경우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60년 후에 우리 후손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어떻게 평가할지 걱정한다면 최말자 씨 사건을 정신 바짝 차리고 바라봐야 할 겁니다. 지금 틀린 거면 60년 전에도 틀린 거고 60년 후에도 당연히 틀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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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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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 (220.XXX.XXX.68)
두 사람을 가해자 겸 피해자로 볼 것이냐가 쟁점이겠군요. 여자는 피해자일 뿐이라는 주장이구요. 유사 사건으로 성기를 자른 여성들에게 가해사실이 인정돼 유죄판결이 난 경우가 많았지요. 혀는 성기에 비하면 성폭력의 도구로는 덜 위협적인 신체 부위인데 자르기 보다는 밀어낼 수 없었나 하는 의문은 듭니다. 처음 사건이 보도됐을 때 과잉방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으나, 남성에 비해 여성의 형량을 높인 것은 지금의 기준에도 안 맞을것 같습니다. 다만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게 된다면 온전히 유지될 질서는 존재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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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23: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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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218.XXX.XXX.231)
사회현상을 바르게 볼수있는글 잘보았습니다,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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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5 0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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