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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빨간 불이다
김영환 2023년 06월 22일 (목) 00:02:21

야근 수술을 끝내고 집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병원으로 출근하려고 자전거를 갖고 가던 서울아산병원의 주석중 교수(61)가 병원 근처 길에서 우회전하던 덤프트럭에 치여 별세한 건 이 시대를 말없이 이끌어 온 의인이자 현인의 안타까운 희생입니다. 

그는 전공의들이 기피한다는 심장혈관흉부외과의 교수였습니다. 내과, 피부과, 소아과, 잘 모르지만, 리스크가 덜한 분야가 그들이 선호하는 과인가 봅니다. 심혈관이 고장 난 사람들을 위해 군대의 ‘5분 대기조’처럼 병원 부근에 거주하며 초응급 수술장으로 즉각 달려오는 그의 팀은 희유한 히포크라테스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요?

역시 흉부심장혈관외과 전문의인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탁월하고 훌륭한'이라는 표현으로 부족한 인재의 부재로 누군가는 살아날 수 있는 소생의 기회를 잃게 된다. 유능한 의사의 비극은 한 사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슬픔을 표했습니다. 

아내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어떤 부인이 주 교수에 대해 쓴 글을 찾아 읽어주었습니다. 그 부인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던 두 손자가 세 번에 걸친 그의 집도로 새 삶을 찾았다고 고인의 의술과 헌신을 추모했습니다. ‘주 님’이라고도 불렸다는 주 교수의 수술 날을 받아놓은 환자들의 허망함은 또 어떻겠습니까?

◇불의의 교통사고로 서거한 고 주석중 교수.
(아산병원 홈페이지 캡처)

고인이 된 주석중 교수는 1988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흉부외과 전공의를 수료했으며 1998년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전임의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2005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버밍엄 여성병원 심장외과 임상 전임의를 역임한 후, 울산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이자 서울아산병원 심장병원 대동맥질환센터 소장을 맡아왔습니다. 

대동맥 수술을 위해서 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 팀은 모두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답니다. 주 교수는 2015년 병원 소식지에서 “흉부외과 의사는 공휴일 구분 없이 항시 응급수술을 위해 대비를 하면서 생활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고 장시간의 수술로 육체적으로도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러나 수술 후 환자가 극적으로 회복될 때 가장 큰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고, 수술할 때까지 힘들었던 일을 모두 잊는다”고 말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주 교수가 “대동맥박리 등 대동맥질환, 대동맥판막협착증 등과 같은 응급 수술이 잦고 업무 강도가 극히 높은 전문 분야에 꾸준히 투신하며 필수 의료 영역에서 국민 건강을 지켜왔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환자를 살리기 위해 개인 시간보다 의업에 24시간을 우선해 왔다”고 추모했습니다.

이어 “흉부외과에서 고도의 역량을 발휘해 온 대표적인 석학이자 최고 임상 전문가를 잃었다는 사실에 비통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흉부외과는 업무 난도가 높고 응급 수술이 잦으며 증가하는 법적 소송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어 전공의 지원자도 급격하게 감소해 왔다. 이런 현실에서 주 교수와 같은 인재를 잃은 것은 의료계를 넘어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애도했습니다.

주 교수는 2020년 서울아산병원에서 전담팀이 대동맥 박리를 치료해 온 결과, 수술 성공률을 약 98%까지 높였다는 연구 성과도 발표했습니다. 대동맥 박리는 찢어진 대동맥이 파열될 우려가 있어 초응급 수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을까만 주 교수의 어이없는 서거를 보며 우회전 일단정지 단속으로 보행자 사고가 20퍼센트 줄었다던 서울경찰청 자랑이 떠오릅니다. 요즘 우회전 일시정지만이 아니고 ‘민식이 법’으로 초등학교 주변의 어린이 보호구역을 시속 30킬로미터로 제한하고 있죠. 똑똑한 내비게이션은 500미터 전부터 경고음을 울립니다. 그 경종은 등·하교 시간만이 아니고 하루 종일 지나갈 때마다  울립니다. 혼자서 “요즘은 야간 초등학교도 있나” 반문하죠. 그렇게 학생들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과로하는 의사들이 출근하는 병원 부근도 ‘의사보호구역’으로 설정해야 하나, 퍼뜩 그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고 주 교수를 치어 숨지게 한 트럭 운전사는 그를 발견하지 못했을 테죠. 대형 화물차의 백미러는 사각이 더 넓다니까요. CCTV를 감식하여 사고의 원인을 잘 분석해 대책을 내놔야 할 것입니다. 

내가 파리에 특파원으로 체재하던 시절인 20여 년 전, 아름다운 샹젤리제 대로의 횡단보도는 아주 길었습니다. 중간 정지 지점도 있었는데 빨간 불에도 건너가는 여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빨리 걷지도 않았고 신호등을 보지도 않았으며 일행과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건너갔습니다. 차도의 정지선에서 기다리던 차들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빨리 건너가라는 독촉을 하지 않았습니다. 회고하면 이것이 진짜  ‘사람이 먼저다’였죠.

어린이들이 길을 건널 때 팔을 들라고 하는 건 비인간적이고 비민주적인 교육입니다. 팔을 들라고 교육할 게 아니고 운전자들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사람이 빨간 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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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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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섭 (121.XXX.XXX.81)
김영환 선생께;

잘 다듬어 표현된 마음을 전하는 글을 읽어 기쁘네.
의사내에 전문 직업 종류는 많다. 그중 흉부외과 교수의 일은
매우 힘들고 어렵고 외롭지만 이 모든것을 묻어버리고 자신의 업무를
충실히 하는 분들로 이들을 위해 우리는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교수라는 직종은 직업의 숙련도 뿐 아니라 연구라는 방법을 통해
새로운 지식과 기법의 개발, 이를 이용한 문제해결등 창조의 기쁨을
느끼고 이를 후학에게 전하며 교육하여 사회에 공헌하는 집단이라고 생각하네.

이들에게는 정치적인 다수의 논리가 필요없고 오로지 진리의 추구만이
목적인 사람들이라고 본다.

이 사회에서 대부분의 전문적인 분야에서 사는 분들이 그러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사회의 존경을 받고 어느정도 보상을 받지만 보상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전문직업의 삶 자체에 의미를 두고 기쁘게 생활한다.

이들이 돈과 권력에 목적을 바꾸는 일이 나타나지 않도록 우리는 교육하고 잘 돌보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이들에게 존경과 희망을 주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고 좋은 글 많이 쓰기 바라네

한 운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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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6 09:48:36
1 0
김영환 (121.XXX.XXX.81)
한 박사, 변함없는 격려에 늘 감사하네....
전문적인봉사가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듯 하네.
이를 격려하고 떠받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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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6 09:52:30
1 0
필자 (39.XXX.XXX.108)
조용한 관찰자 님, 참으로 소중한 인재를 빼앗겼습니다. 후배들이 선배님의 유지를 잇길 소망합니다.
답변달기
2023-06-22 17:35:30
0 0
조용한 관찰자 (175.XXX.XXX.167)
고인의 희생과 헌신, 비보에 머리가 숙연해짐을 느낍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 영면이시기를 빌며...
답변달기
2023-06-22 10:23:05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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