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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사인(死因)은 전신성 패혈증
이성낙 2023년 06월 28일 (수) 00:00:35

세계사에서 조선은 절대 짧지 않은 왕조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집트가 3,200년, 로마가 2,200년, 일본이 1,600년, 신라가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태조 이성계( 太祖 李成桂, 1335~1408)로부터 시작된 조선왕조는 27대 순종(純宗, 1874~1926)까지 518년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조선에서는 특히 세종대왕(世宗 大王, 1397~1450, 재위 1418~1450)과 22대 임금 정조(正祖, 1752~1800, 재위 1776~1800)가 성군(聖君)으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그중 세종대왕의 사인(死因)은 요즘 흔히 말하는 당뇨병(糖尿病)을 포함한 대사증후군(代謝症候群, Metabolic Syndrome)일 거라는 이론이 지배적입니다. 반면, 정조의 사인으로는 ‘독살설’이 논란돼왔지만, 근래 학계에서는 전신성 패혈증(敗血症, Sepsis) 때문이라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필자와 국사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역사학자 이태진(李泰鎭, 1943~ , 서울대 역사학) 명예교수가 학술적 협업을 통해 정조의 사인을 밝혀낸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자찬합니다. 역사의 편린(片鱗)이긴 하지만 정조의 죽음을 두고 오랫동안 온갖 억측과 주장 그리고 반론이 제기되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지난 4월, 이태진 교수가 <정조실록(正祖實錄)> 중 병상에 있던 정조가 피부 질환에 관해 의원들과 나눈 8건의 기록을 필자에게 보내왔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정조는 재위 24년(1800) 6월 14일 병석에 눕고 말았다. 크고 작은 종기가 온몸에 퍼졌고, 피고름이 흐르면서 고열에 시달렸다. 큰 종기는 벼루 크기만 했다. 6월 28일, 임금은 백약이 무효해 유명을 달리했다”(중앙일보, 2023.6.3.)

이를 의학적 시각에서 풀어보면 “건강이 악화되어 병석에 누웠다. 온몸에 피고름이 흐르는 크고 작은 종기가 났고, 큰 종기는 무려 ‘벼루’만 했다. 그리고 고열에 시달리다 보름 만에 사망했다”.
<정조실록>의 여덟 가지 기록은 임금의 건강 상태를 기술하면서 ‘종기’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하고, ‘피고름’이라는 표현도 쓰고 있습니다. 

세균(Bacteria)이 피부 모낭에 침입해 생긴 염증을 모낭염이라 하고 모낭염이 심해지고 커져서 결절이 생긴 것을 종기(腫氣, Furuncle)라고 하며, 이 반응으로 피하(皮下)에 고름이 고이게 됩니다.
그런데 세균이 증폭되면 ‘고름 주머니’를 형성하고, 이 고름 주머니 여러 개가 하나로 뭉쳐서 옹(癰, Carbuncle)이 되기도 합니다. ‘옹’은 쉬운 말로 표현하면 ‘큰 종기’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염증 과정 중에 병원균이 혈관 내로 들어가 고열을 동반한 급성 전신성 염증 상태로 진행되는 것을 패혈증(敗血症, Sepsis)이라고 합니다. 매우 치명적인 질병입니다. 지금처럼 항생제가 없던 시절에는 더욱 위험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1800년 재위 24년 6월 28일에 정조가 ‘전신성 패혈증’으로 승하(昇遐)한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입니다.

참고로, <정조실록>에 기술된 피부병 증상이 워낙 비과학적 ‘대화형’ 서술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이에 필자는 방동식(方東植, 연세대 의대 피부과) 명예교수, 이은소(李殷素, 아주대 의대 피부과) 교수와 함께 이태진 교수가 보내준 ‘정조의 피부병 관련 여덟 항목’에 대해 심도 깊은 의견을 나누어 결론을 유추했다는 사실을 밝혀둡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1940~1950년대에 항생제가 없던 시절, 각종 피부병, 특히 종기가 맹위를 떨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환자들이 애용하던 ‘조고약(趙膏藥)’을 먼 옛날 정조의 환부에 썼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고 패혈증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몇 년 전 해외여행 중인 한 지인으로부터 급한 전화를 받았는데, 발이 탱탱하게 부어오르고 피부가 화끈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증상이 발가락 부위에서 시작해 정강이로 번지고, 고열에 오한(惡寒)까지 난다고 하기에 ‘패혈증’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즉시 병원 응급실을 찾아가 항생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다행히 그 지인은 4~5일 입원해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퇴원했다고 합니다. 

또 몇 해 전에는 더러운 손으로 자신의 코털을 뽑았다가 세균이 대뇌까지 침투해 사망한 남자도 있었습니다(2012.2.1.https://m.korea.kr >weekendview). 

이는 패혈증이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는 간접증거입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 한 나라의 임금인 정조까지 삼켜버린 패혈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했을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아울러 의학도로서 그 정조의 사인을 인문학과 의과학이 융합해 밝혀냈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갖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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