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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주도를 떠나며
최창신 2008년 05월 29일 (목) 07:22:29
-걸어서 탐라(耽羅) 일주(11)-

길을 가다가 청소년들이 싸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합시다. 보통사람들은 잠깐 구경하다가 그냥 지나갑니다. 상당히 결기(氣)가 있는 어른이라 해도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싸우지들 말라’고 소리나 지르고는 자리를 뜨는 게 상례(常例)라 할 수 있습니다.

   
  ▲ 제주의 봄은 노란 유채꽃으로 대표됩니다. 가을철 결실을 맺는 감귤 역시 황금빛이어서 결국 노란색은 제주 특유의 색상인 셈입니다.  
그러나 그 싸우는 청소년들 틈에 자기의 아들이나 조카가 끼어있을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아무리 살벌해도 지체하지 않고 싸움판에 끼어들어 편을 들거나 중재(仲裁)를 할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후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가족이 관계되어 있고 가족은 사랑의 끈으로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탐라의 땅을 걸으면서 이곳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 자라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박함이 좋았고 야자수처럼 이국적인 나무들이 무성한 그 고장이 우리의 땅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잘 가꾸고 싶었습니다.

순전히 아끼는 마음에서 그들이 펼치는 일상의 틀을 헤집고 훈수를 두고 싶어졌습니다. 눈흘김을 당하고 더 나아가 욕을 먹더라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먼저 몇 가지 사례.

첫 장면. 대정(大靜 )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어느 식당에 들렀을 때 옆에 앉은 그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손님들의 자세는 실로 가관이었습니다. 중년 남녀 5명이 음식을 주문해 놓고 나누는 대화는 크지 않은 식당을 온통 뒤집어 놓고 있었습니다.

복장이 좀 거친 것은 일하다 왔기 때문에 그러려니 싶어 괜찮은데 왜 그렇게 큰 소리로 떠드는지. 바로 코앞에 앉아 있는 동료를 두고 마치 30m 이상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하듯 계속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그들에게 이웃이란 개념은 없었습니다.

두 번째 장면. 서귀포에서 어느 해물전문식당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역시 너무 시끄러워 돌아 나오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등장인물이 여러 명이 아니고 50살 전후로 보이는 아주머니 단 한 명.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데 엄청나게 목청이 큰 데다 대화 내용이 살벌하여 마치 상대방이 잡히면 죽여 버릴 것 같았습니다. 한 손으로는 빈 그릇과 음식 찌꺼기를 치우면서 다른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놀부 마누라가 불쌍한 흥부 족치는 건 저리가라였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떠들기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밖에 나가서 통화하라’고 항의했더니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왔습니다.

세 번째 장면은 제주공항. 탑승수속이 시작되는 지점에 제복차림의 아가씨 두 명이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탑승권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승객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는 단순작업이라 심심해서 그랬을까요? 수다를 떨고 있었습니다.

   
  ▲ 봄날에도 하얀 눈을 이고 있는 한라산, 남국의 정취를 자아내는 열대 가로수를 만날 수 있는 제주도는 보석처럼 다듬어야 할 자랑스러운 우리 국토입니다.  
줄 뒤에 서서 보니 이미 수다가 시작돼 있었는데 내 차례가 되고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길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멀리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떠드는 그들의 대화 내용은 물론 업무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었고 그나마도 급하거나 중요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들에게 승객은 전혀 의미도 없고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선진국에서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이런 장면들이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든 다반사처럼 펼쳐지고 있습니다. 육지의 대도시에서는 오히려 그 정도가 더 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주도를 향해서만 쓴소리를 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아울러 정말 훌륭한 관광지로 세계인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서귀포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발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병원에 들렀습니다. “완전히 치료하려 하지 말고 임시방편의 조치만 해줄 수 없겠습니까? 여기서부터 계속해서 동쪽 해안선을 휘돌아 제주까지 가도록 손질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하고 의사에게 부탁했습니다.

진찰을 마친 의사선생은 일단 치료를 해주면서 그만 걸을 것을 거듭 당부했습니다. “더 걷는 것은 무리입니다. 걷기도 힘들겠지만 만일 계속 걷게 되면 발바닥 전체가 떨어져나갈 위험이 있으니 중단하십시오.”

아쉽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의사의 강한 지시에는 고집을 굽힐 수밖에. 서복 기념관에 가서 둘러본 다음 택시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이동하여 상경했습니다. 발이 나으면 다시 서귀포에 가서 나머지 절반을 걸을 것을 스스로 다짐하면서.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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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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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210.XXX.XXX.253)
선진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지적이 많이 나오고, 고맙게 받아들여 시정습관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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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4 16:3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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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익 (210.XXX.XXX.253)
앞으로 남은 동부지방 순방을 꼭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좋은 의견을 주셨으면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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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4 16:3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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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익 (210.XXX.XXX.253)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주도를 아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놈의 그 고질병은 한국인의 평균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선생님의 지적처럼 제주는 다른 곳하고는 달라도 한참 달라져야 하겠지요. 그 품격이 말이죠.
이 기고문을 이 공간에서만 세상에 알릴 것이 아니라 제주도내에 있는 일간지에 기고해 주심이 어떨까요? 원고를 보내면 그냥 실어 주거든요.
답변달기
2008-06-04 16:3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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