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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없었던 약속
한만수 2023년 11월 15일 (수) 01:00:01

지난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목요일 오후에 기차를 타고 집이 있는 영동 집에 갔습니다. 보통은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집에 갑니다. 그날은 여름치고는 바람이 좋아서 냇가를 따라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중간쯤 가다 보니 하천 정리 공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사 현장을 피해 다리로 올라섰는데 1톤 트럭이 갑자기 멈췄습니다. 조수석 문이 열리면서 고등학교 때 친구가 반갑게 웃는 얼굴로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 친구하고는 고등학교부터 군대에 가기 전까지의 추억을 거의 공유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연극도 하고, 무전여행도 가고, 등산도 자주 다녔습니다. 특별한 놀잇거리가 없던 시절이어서 밤마다 만나 장터의 빈 가게 안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냇가에서 고기를 잡아서 매운탕을 끓여 몰래 술을 마시기도 하고, 2학년 때는 둘이 무단결석을 해서 가출한 것으로 오해를 했던 담임선생님께 초주검이 되도록 얻어맞기도 했던 친구입니다. 

영동은 인구가 5만이 안 되는 작은 군이라서 2047년이면 군이 소멸되는 위험지역에 해당됩니다. 인구가 작다고 해서 인구가 많은 지역보다 이런저런 행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술을 먹다 보면 필경 누군가 만나게 되고, 무슨 행사에 초대되거나 모임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집에 내려가도 외출은 거의 안 하는 편입니다. 외출을 안 하니까 저를 아는 사람들도 서울에서 아직 안 내려왔을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고 전화도 하지 않습니다.   친구들도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만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시간은 오후 2시 무렵이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11시 30분 차를 타서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점심을 같이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는 점심을 먹은 것 같아서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포도 농사를 짓는 친구는 농자재 가격을 알아보려고 읍내에 나왔다며 다리 난간에 기대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2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에 만날 때는 술 한잔하자는 약속을 하고 서운하게 헤어졌습니다. 

여름이 꼬리를 감출 무렵이 됐습니다. 날씨는 여전히 여름에 머물러 있지만, 절기상으로는 가을에 접어들었을 때이기도 합니다. 가뭄에 콩나는 식으로 카톡을 주고받는 친구로부터 다리 위에서 만난 친구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폐암에 걸렸다는 겁니다. 불과 두 달 전쯤에 건강한 모습을 봤는데 폐암 말기라는 말을 들으니까 갑자기 시간이 정지해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반박을 하니까, 폐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된 것은 보름 전이라는 겁니다. 그래도 믿어지지 않아서 폐암에 걸린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먼저 받고 수술하기로 했다.”

친구도 폐암 말기라는 진단에 충격을 받았는지 목소리가 몰라보도록 약해졌습니다. 농촌에 살다 보면 갑자기 암을 발견해서 시름시름 앓다 몇 개월 만에 돌아가시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70세가 넘은 노인이 젊은 사람 못지않게 일도 열심히 하고 소주 한두 병도 거뜬히 드시다가 암 진단을 받고 나면 거의 삶의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평생 마시던 술을 끊고,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기시니까 독한 항암제를 견디지 못해 돌아가시는 경우가 흔합니다.

친구도 항암제를 맞고 있어서 제대로 끼니를 챙겨 먹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환자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죽 종류를 주문해 줬습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죽을 주문해 주면서도 친구가 죽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안 했습니다.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통화를 하던 중에 갑자기 모 문예지에서 단편소설을 써 달라는 청탁이 왔습니다. 보통 일주일이면 단편을 쓰는데, 그때는 다른 원고까지 겹쳐서 거의 열흘 만에 단편을 써서 메일로 보냈습니다.

서울 집필실에서 밤 9시쯤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혼자 소맥을 마시며 느긋하게 영화를 보다 갑자기 친구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밤이 늦은 것 같아서 전화는 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건강을 묻는 메시지에 답신이 오지 않아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술도 적당히 취한 상태라서 시간이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새벽에 글을 쓰다 메시지가 왔다는 알람에 핸드폰을 확인했습니다. 태풍이 온다는 안내 메시지를 확인하다 친구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 시간이면 일어났을 것이라는 생각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여전히 답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도 그 시간에 친구가 무덤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안 했습니다. 항암주사를 맞고 있거나, 핸드폰을 두고 밭에 갔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아침을 먹고 전화를 해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전화를 안 받거나 메시지 답신을 안 해 줄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카톡을 주고받는 친구에게 전화했습니다.

“야! 영일이 뭔 일 있냐? 전화를 안 받아.”
“그 친구 장례 치른 지가 삼 일이나 지났다.”

저는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머릿속에서 수많은 말들이 병목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습니다. 그 말 정말이냐? 그럼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 너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모임에도 자주 빠졌잖아? 너하고 그렇게 친한 줄은 몰랐다? 는 등 많은 말들이 생각은 났는데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라도 한번 가 봐라.”

친구도 저를 이해했는지 툭 던지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머릿속에 들어 있던 수많은 말들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다리 위에서 “다음에 만나 술 한잔하자.”라는 지킬 수 없었던 약속만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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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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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 (220.XXX.XXX.179)
70이 넘은 나이는 그런 나이입니다.언제라도 '오라' 하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기회가 있으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친구들을 만나야 합니다.그 많은 재산 한푼도 못 가져 갑니다. 다만 추억만 가져갈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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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5 10:2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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