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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고향에 다시는 가지 못하리
임철순 2023년 11월 23일 (목) 00:00:58

그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혼자 칼싸움하며 공상의 날개를 펼치던 내게 그늘을 만들어주었던 마당 끝의 감나무, 늘 올라가고 싶었던 집 뒤꼍의 살구나무, 사랑방 앞 밭둑의 대추나무, 동네 아이들이 올라가 우리 집을 불온하게 내려다보던 울타리 앞의 뽕나무…. 

 
  내가 태어나 살던 집. 건물의 향과 전체적 틀만
비슷할 뿐 완전 딴집이다
.

60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에서 제일 먼저 알게 된 건 ‘내 나무들’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나무들이 사라진 이유는 내가 살던 집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낯설고 차가운 파란색 슬레이트 지붕과 녹슨 철제 대문이 나를 거부하는 것 같은 이 집이 과연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인가. 건물을 헐고 통째로 새로 지어 할아버지와 함께 기거했던 사랑방과 길가로 난 툇마루, 어머니가 기대어 서 있던 부엌문, 채송화와 골단추(골담초)가 아름답던 장독대는 자취도 없어졌습니다. 댓돌에 신발은 있는데 다 어디 갔는지 여러 번 기웃거려도 그 집은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1950~60년대에 내 고향 되찬이에 살던 사람들이 한 달 전인 10월 21일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다시 모였습니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중장3리, 우리 동네 이름 되찬이의 뜻은 ‘목숨을 되찾고 장수하는 마을’입니다. 그렇게 만나서 장수하자는 게 아니라 ‘이제 우리가 언제 다시 만나겠나’ 하는 마음에서 살던 곳을 찾았습니다. 

나는 그동안 되찬이를 왜 한자로 송정(松亭)이라고 쓰는지 의아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 집이 있던 곳이 송정이고 되찬이는 좀 옆쪽이었으며 구렁말, 아랫말, 송정 등 마을을 뭉뚱그린 이름이 되찬이였습니다. 내 생가에 이르는 길목에는 경로당을 겸한 마을회관이 들어서 있고, 그 옆에 유산정(柳山亭)이라는 이름의 좀 생뚱맞은 정자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길 이름이 유산로라는데, 왜 유산로인지 그 유래를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앞장서 모임을 제안하고 주재한 것은 내 동갑 친구인 ‘대문집 아들’ 팔중이입니다. 8월에 태어난 팔중이(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도 이번에 알았음)는 지난봄부터 모임에 열성을 기울여 추진위원회를 만들고, 회비 납부와 참여를 독려하며 연락을 도맡았습니다. 재상봉 행사 날은 고기며 과일이며 동네사람들이 다 함께 먹을 음식과 선물을 차에 한가득 싣고 갔는데, 차에 편승해서 가는 동안 친구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갖은 고생을 하며 정신없이 살면서도 고향을 잊지 않은 그 마음씨가 고마웠습니다. 간간이 빗낯이 떠서 걱정한 것과 달리 바람이 좀 불었을 뿐 비로 인한 문제는 없었습니다. 울산, 서울, 오산, 서정리, 대전...이렇게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이게 누구여?”를 연발하며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습니다.

 
마을회관에 모인 고향 사람들.
여성들은 주로 회관 안에서 놀았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뜬 나를 사람들은 ‘쪼그맣고 이뻤던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며가며 만화책을 읽은 걸(집에 가서 보면 혼남) 공부를 열심히 한 걸로 지금까지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은 ‘계룡산 호랭이’로 통하던 우리 할아버지, 무서웠던 그 어른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힘센 청년이던 ‘바위’는 이미 팔순을 넘긴 노인이 되어 잠잠히 앉아 있었습니다. 내가 초등 5학년 때 서울에서 온 친척 아저씨가 “이 동네에서 누가 제일 쌈 잘하느냐?”고 묻기에 바위형을 가리켰더니 괜히 눈밭에 불러내 코피를 터뜨리고는 이겼다고 좋아한 일이 있습니다. 바위형은 내 이름을 듣고도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던데,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미안했습니다. 

먹고 마시며 왁자지껄 흥겨운 하루였지만, 내 예상과 우려대로 아무런 체계도 없고 일정한 프로그램도 순서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물서가 진란’해서 서로 누구냐고 묻고 또 묻고, 한 이야기 또 하고, 어떤 사람은 점도록 이야기하고도 이름을 모르는 채 헤어졌습니다. 

마을회관 앞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다가 나는 슬그머니 빠져나와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이 길이 이렇게 좁고 낮고 작았던가. 내가 놀던 개울은 들어갈 수도 없게 시멘트 공사로 준설 정비돼 있었고, 여러 집이 함께 쓰던 샘터나 연못, 목화밭은 다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팔중이네 대문 앞 마당은 손바닥 만하게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우리 집 사랑마루에서 서쪽으로 우러러보던 산 위의 황새바위도 나무가 우거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나의 ‘큰 바위 얼굴’쯤 되는 우리 동네 명소였는데. 

​할아버지가 주도해서 조성한 저수지는 집에서 꽤 걷는 줄 알았더니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나는 저수지와 수리조합을 구분하지 못해 그곳을 수리조합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가까이 가 보려 했지만 진입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남의 밭으로 들어갔더니 밭 가운데 세워둔 소음장치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낯선 동물이라도 되는 양 나를 내쫓았습니다. 

 
 

멀리 보이는 게 계룡산. 왼쪽의 파란 지붕이 내가 살던 집,
오른쪽에 정자와 마을회관이 있다.

동네는 변했고, 외지인이 많이 들어와 주민의 40%에 이른다고 합니다. 우리 동네는 계룡산이 가깝고 계룡저수지의 풍치도 아주 좋은, 그야말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입니다. 어느 장관도 몇 년 전 우리 동네에 별장을 지었더군요. 사람 없는 그 집의 개가 유난히 극성스럽게 짖었습니다. 신작로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의 동네 앞산 알미산은 정상 부분이 깎이고 파헤쳐져 볼썽사나웠습니다. 누군가 전망 좋은 곳에 집을 짓던 중 갑자기 문화재가 나와 공사가 중단됐다고 합니다. 

​‘삼국지’에서 맹활약하는 조자룡을 조조가 내려다보던 경산(景山)이라고 내가 생각했던 산이나 장비가 호통치던 장판파 같았던 언덕은 그저 보잘것없고 낮고 작았습니다. 지대가 꽤 높았던 것 같던 무너미의 우리 계룡초등학교도 얕기만 했는데, 계룡저수지에서 계룡산까지 케이블카를 놓는다는 둥 담벼락에 펼침막이 참 많이도 붙어 있었습니다. 

​미국 소설가 토머스 울프(1900~1938)는 고향의 변화로 인한 상실감과 충격에서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1940년)를 썼지요. 이문열은 고향 문중의 모습을 통해 쇠락하고 사라진 것들의 기억을 펼친 연작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1980년)라는 동명의 작품을 냈습니다. 

​유치환의 시 ‘그리움’에는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향에 가서 나는 공중의 깃발처럼 속으로 울면서 고향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고향을 떠나왔음을, 이제 어쩔 수 없이 실향민임을, 다시는 그때 그 고향에 갈 수 없음을, 어느덧 삶의 석양길에 접어들었음을 잘 알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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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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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 채 (175.XXX.XXX.140)
동병상린. 넘 슬픕니다. 그래도 저보다 더 낫습니다. 제 고향은 전남 화순 적벽, 수몰되었습니다. 무등산,옹성산, 백아산, 모후산은 지금도 의젓한 데 창량뜰과 고향 마을은 수궁궁궐입니다. 광주광역시민의 상수도 저수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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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12: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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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97)
그러시군요. 참 안타깝고 서글프시겠어요. 산은 의젓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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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1 00: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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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신 (121.XXX.XXX.224)
이동원 동문의 향수에 나오는 고향이 군요.
부모님이 함경북도 온성에서 내려와 고향이 없는 나로서는
엄청 부럽네요.
한편으로 세월과 변화가 무심하기도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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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12:4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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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29)
이동원의 향수에 나오는 고향은 정지용 시니까 충북 옥천이지요.

부모님 고향이 이북이면 자녀들 고향도 이북이 되는 걸까?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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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22: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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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진 (210.XXX.XXX.144)
저도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갔었는데, 운동장이 너무 작아서 놀랐적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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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11: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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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11.XXX.XXX.29)
그때도 그렇게 크게 웃었는지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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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22:5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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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 (125.XXX.XXX.230)
그때 고향에 다시는 가지 못하는 것은 영원히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그때 고향이 없으니 이제 고향은 없는 것이니까요...
어릴 적 제가 살던 곳은 선생님의 고향에서 차로 30분 거리(그때는 한 시간도 더 걸렸겠지요)에 있는 논산읍 취암동이었습니다. 저도 국민학교 5학년 2학기 서울 외삼촌댁으로 '유학'을 와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제가 떠난 거겠지요.
그렇게 우리는 모두 실향민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을 떠나 그 옛 고향에서 멀지 않은 대전에 살고 있지만 (그때) 고향은 가지 않고 있습니다. MY OWN PRIVATE NONSAN을 기억만 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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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09:36:37
0 0
임철순 (211.XXX.XXX.29)
네. 그 기억 속에서 고향은 온전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가보지 않는 게 나은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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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09:49:40
1 0
한만수 (121.XXX.XXX.211)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삼거리까지가 한참 걸리는 거리였는 줄 알았는데, 장터에서 국도로 나가는 초입에서 삼거리가 보이더라구요. 100미터더 안되는 거리. 구렁말은 전국적으로 있는 마을 이름 같습니다. 생애 단 하루 밖에 없는 2023년 23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좋은 날 보내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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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08:05:15
0 0
임철순 (211.XXX.XXX.29)
그러네요. 오늘이 23일이네. 세월은 잘 간다, 아이 아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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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0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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