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잠시 옛생각에 잠긴 일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추워진 날씨가 그런 생각을 더 하게 하는 거라고 여깁니다. 교회는 떠난 지 오래되었지만 학생 시절에 교회의 어린이성가대를 이끌던 추억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경영대학의 학생이니 성가대를 잘 이끌려고 다방면의 노력을 했고 아이들(지금은 나와 10년 안팎의 나이차 나는 어른들)에게 정을 쏟았으니까요.

어느 때 한동안 어린이날에 방송사가 벌이는 창작동요제를 열심히 본 것도 과거의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몇 달 전 LP 음반을 처분할 때 눈에 띄는 선명회 합창단의 것은 남겨 두었습니다. 가장 뚜렷이 기억하는 것 한 장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굳이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포스메가합창단의 한 단원에게 LP 박스들을 넘기고 난 후 "선명회 음반이 발견되면 빌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석 장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젠 이것도 돌려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지털 파일로 바꾸어 지니겠다고 생각했던 건데 실행되지 않으니 그리 생각했습니다. 하기야 파일로 바꿀 정도면 음반 전부를 넘기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쨌든 선명회의 음반을 생각하면 어린이 성가대를 지휘하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마저 돌려주려고 마음먹으니 유튜브에 올라있지 않을까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검색하니 과연 있었습니다. 음반 하나의 곡을 들으니 옛 생각이 났습니다. 1972년인지, 73년인지 교회음악 강습회에 참여했는데, 강사진 중 윤학원 지휘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강자에게 날을 잡아서 선명회합창단을 방문하라고 했습니다. 수강자 중 상당수가 등촌동에 갔습니다.

그 당시의 한국 경제 수준에 비해 훌륭한 집들이어서 부러움을 먼저 느꼈습니다. 한 집은 합창 연습 등을 하는 집이고 한 집은 숙소였다고 기억합니다. 몇 곡의 합창을 우리 앞에서 연주하였는데 꿈속에 있는 듯하였습니다. 노래가 훌륭하니 단원들도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 없었습니다. 한 곡 한 곡을 평안하면서 복스런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지휘자가 독창 부분이 있는 노래에서 초등학교 3학년생에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곡을 나중에 음반으로 들을 때는 독창 부분을 나이든 단원이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어린 단원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 기회를 줄 만큼 고운 소리였습니다. 그 어린 단원의 고운 모습을 보면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일곱 아이들 중 조용한 소녀를 연상했습니다.

나중에 유튜브로 듣다가 그 독창이 있는 노래는 ‘고향의 봄’이었다고 생각났습니다. 그 뒤 음반을 구입했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 시간이 흐른 뒤 독창자를 추정해 보았습니다. 뉴욕 메츠의 소프라노 홍혜경이 우리 사회에 알려졌을 때 그의 약력을 보고 대략 시기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내가 선명회합창단을 찾은 때 그 속에 학생 홍혜경이 있었다고 여겼습니다. 그 독창 부분을 홍혜경이 불렀다고 단정했습니다. 한 음반의 다른 곡에서도 같은 음색의 독창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합창을 듣다가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편곡은 한국 사람이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은 한국에서 훌륭한 편곡 솜씨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럼 음반에 적혀 있는 편곡자 이름이 거짓이란 말인가? 그의 말 때문에 잠시 약간의 혼란이 일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도 아름답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은 적이 없었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여겼습니다.

몇 곡을 듣고 나서 질의응답을 할 때 한 참가자가 물었습니다. “단원들은 어떻게 선발합니까?” 그 질문은 나도 궁금하던 바였습니다. 합창단의 시작은 전쟁고아를 모아 한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윤학원 지휘자의 대답이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중에서 선발합니다.” ‘그렇지, 이젠 전쟁고아는 없는 시절이긴 하지.’

등촌동 길은 내게 낯선 곳입니다. 몇 해 전 밤에 잘 알지 못하는 등촌동의 골목을 걷다가 선명회합창단(아마도 영문 이름인 월드비전합창단이었을 것)이라는 표지를 보았습니다. 잠시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했습니다. 그전엔 상당히 넓었는데 면적이 줄어든 것으로 보였습니다. 예전엔 그 음악원에서 단원들이 합숙을 했는데 이젠 그러지 않는 모양이라고 짐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수십 년간 아름다운 기억을 갖고 있던 음악원이 변모한 모습을 보니 위축된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그와 함께 그보다 10여 년 전 어느 행사에서 이제는 이름을 영문으로 바꾼 월드비전합창단의 연주를 본 기억이 났습니다. 예전의 모습과는 달라서 그때도 섭섭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찾던 중 최근의 월드비전합창단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작년 성탄절을 맞으며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연주한 장면입니다. 보면서 생각을 고쳤습니다. 예전과 다르다고 섭섭하게 여길 게 아니라 그 다른 모습은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세월이 흘렀고 내 감정이나 생각이 많이 변했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최근 공연에는 이전과 다른 스타일의 편곡, 무대 연출이 돋보였습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도 색다르게 편곡하였는데 헨델 메시아의 ‘할랠루야’ 중 일부 선율을 피아노 반주에 삽입하여 흥미와 효과를 높였습니다.

유튜브로 더 찾아보았더니 다른 음반은 있는데 내가 찾는 하나의 음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날 지나서 과거 이름인 선명회합창단의 ‘고향의 봄‘ 한 곡이 올라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곡 소개에는 독창 홍혜경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내가 갖고 있는 음반에 속한 곡인데 유달리 그 유튜버는 음반 중 이 곡만 올렸습니다.

그런데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계속 관련 영상과 음반의 내용을 알려주니 언젠가는 음반 전체가 올라오는 걸 만날 수가 있으리라고 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LP 음반을 홀가분하게 마저 돌려주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내가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일은 포기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합창단 연습 날 돌려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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