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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밤 야식 먹기
한만수 2023년 12월 14일 (목) 01:20:46

지금도 지방 오일장에 가보면 가게가 줄지어 서 있습니다. 가게의 구조는 함석으로 지붕을 하고 기둥만 있는 건물 가운데 가로로 길게 칸막이를 해 놓은 것입니다. 칸막이를 중심으로 양쪽에서 장사꾼들이 장짐을 풀고 장사를 하는 구조입니다. 
장날에는 장꾼들이 차지하고 전을 펼쳐 놓는 가게는 무싯날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됩니다. 주로 칸막이에 걸터앉아 놀거나, 비가 오는 날은 가게 안에서 구슬치기도 하고, 여자아이들은 땅따먹기 같은 걸 하기도 합니다. 

밤이 되면 달빛이 있어도 가게 안은 컴컴하게 어둠이 고여 있습니다. 그 시간은 제법 머리가 굵어진 고등학생들이나 십대 후반의 청소년들 차지가 됩니다. 캄캄하니까 어른들이 오는지 눈치를 보며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오늘 저녁에는 어느 집에 가서 놀지 궁리를 하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장터가 넓어서 가게 안이 몹시 춥습니다. 가게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친구들이 모이기를 기다렸다가 어느 집 뒷방으로 몰려가거나, 돈을 걷어서 도토리묵채를 파는 식당이나, 중국요리를 파는 식당으로 몰려갑니다.

요즘에는 짜장면이나 도토리묵채 한 그릇을 팔면서 밤이 이슥해질 때까지 방을 차지하고 앉아 있지는 못할 겁니다. 그 시절에는 동네 장사라서 짜장면 한 그릇을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고도 내 집처럼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도토리묵채를 사 먹을 돈도 없는 날은 국수를 끓여 먹습니다. 요즘에는 영동군 전체에도 국수공장이 없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면소재지마다 국수공장이 있었습니다. 국수공장에 가면 국수를 한 관씩 묶어서 팝니다.

​일반 가정집에서 3kg짜리 국수 한 개를 사면 한 달 정도는 먹습니다. 국수는 샛밥의 단골 메뉴입니다. 모를 심거나, 벼를 벨 때 샛밥으로 국수가 나옵니다. 요즘처럼 멸치며 다시마, 무, 양파 등을 푹 끓여 육수를 만든 잔치국수가 아닙니다.

박을 반으로 잘라서 속을 파낸 바가지는 국수 그릇입니다. 바가지에 국수를 한 움큼씩 담아서, 논 구석에 있는 샘에서 퍼온 물을 적당히 붓습니다. 고추며 김치를 다지고, 참기름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 소를 얹으면 맛있는 새참이 됩니다. 거기에다 막걸리를 한 사발 먹으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을 정도로 배가 부릅니다. 둥구나무 밑에 누우면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가지 사이로 햇볕이 쏟아집니다. 밀짚모자로 얼굴을 덮고 30분 정도 꿀맛 같은 낮잠을 잡니다. 잠이 오기 전에는 얼굴로 기어 올라오는 개미를 잡느라 뒤척이기도 합니다. 일단 코를 골기 시작하면 개미가 아니라 뱀이 와도 모릅니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대략 식당에서 국수 1인분 분량이 100g 정도입니다. 라면 한 개 무게가 수프를 포함해서 100g이 넘는 이유도 그 점에 있습니다. 국수 한 관은 3.75kg입니다. 국수 한 관을 사면 37명이 먹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요즘 고등학생들도 아무리 먹성이 좋아도 라면 두 개 먹는 학생들이 드뭅니다. 그 시절에는 집에서 배가 빵빵하도록 저녁밥을 먹고 나와서도 네댓 명이 국수 반 관은 우습게 먹어 치웁니다. 나머지 반 관은 김치며, 간장이며, 참기름이나, 겨울 같으면 동치미 국물을 내놓은 주인집 아들 몫이 됩니다. 

배는 국수를 잔뜩 먹어서 터질 것처럼 부르겠다, 겨울이라서 방에 군불을 때서 방은 뜨근뜨근하겠다, 문밖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앙상한 감나무 가지가 휘익!휘익! 휘파람을 불고 있겠다, 슬슬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합니다.

요즘처럼 방이 큰 것도 아닙니다. 설령 방이 크더라도 평소에는 잠을 자지 않는 구석방에는 장에 내다 팔 콩이며, 팥이나 들깨 등 이런저런 곡식 자루가 쌓여 있기 마련입니다. 좁은 방에 이리저리 얽혀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하나둘 잠이 듭니다. 누군가 요란하게 코를 고는 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나 앉으면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입니다. 

밤이 깊으니까 바람 소리는 더 요란하게 창호 문을 후들겨 패고 있습니다. 집에까지 걸어가 봤자 오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찬바람이 쌩쌩 부는 추위를 뚫고 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체념하며 다시 누워서 눈을 감습니다. 이번에는 새벽에 일어나 냉기 섞인 바람을 뚫고 가는 것이 더 추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일어나 앉아서 코를 골며 자는 친구를 흔들어 깨웁니다. 

“자고 갈텨?”

친구는 눈도 뜨지 않고 돌아누우며 다시 코를 곱니다. 다시 갈등이 밀려옵니다. 자고 가나, 새벽에 가야 하나 갈등하다 보면 잠이 올 턱이 없습니다. 그러다 결국 벌떡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갑니다.

여기저기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골목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괜히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에 저녁에 놀러 나온 걸 후회하면서도 부지런히 걸어서 집에 도착합니다.
가족들은 모두 잠이 든 방문 앞으로 도둑처럼 발걸음 소리를 죽여 다가갑니다. 옆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살짝 들어 올려 열고 방문을 엽니다. 달빛이 파고든 방안에서 동생들이 갑자기 밀려든 찬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이불 속으로 파고듭니다. 

대충 옷을 벗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따뜻한 온기가 온몸을 감싸면서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옵니다. 집에 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벽 찬바람에 오돌오돌 떨며 집으로 갈 친구들을 상상하면 샐쭉이 웃음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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