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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허찬국 2023년 12월 15일 (금) 01:10:06

스산한 12월입니다. 보통 크리스마스 음악을 찾아 듣고, 장식을 집 안팎으로 걸 즈음인데 올해는 크고 작은 일로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일과처럼 같이 산보 다니던 작은 반려견이 실명하여 거동이 쉽지 않게 되었고, 치과엘 가야할 일이 생겨 어렵게 추진한 제주 여행이 반토막 나더니, 올해 두 번째로 항암 투병하던 가까운 지인을 떠나보냈습니다. 세상사도 어지럽습니다. 12월이 되면 흔히 볼 수 있는 교회 어린이들의 단골극(劇) 마리아-요셉-동방박사 연극의 배경인 베들레헴 남쪽의 가자 지구에서는 극심한 증오와 절망 속에 살상이 이어지며,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죽고 다치고 있습니다. 작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유럽의 우크라이나 전쟁도 계속되고 있지요.

‘양국 방안’의 필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는 가자전쟁 비극

과거에도 유대지방이 큰 전쟁터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2천 년 전쯤 이후만 보아도 유대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두고 기독교와 이슬람교 세력 간 수백 년에 걸친 소위 ‘십자군 전쟁’이 벌어집니다. 당시 기독교의 동서 교회의 분열 등 교황 우르바노 2세가 1095년 십자군을 소환한 배경이 간단하지는 않지만 서유럽 기독교 왕국들의 십자군이 성지 탈환을 내세워 유대지방을 원정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전쟁을 벌였지요. 

2천년 가까이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유라시아 대륙 각지에서 흩어져 살며 박해와 조롱의 대상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말살 정책으로 약 6백만 명이나 희생되는 참사(Holocaust)를 겪었지요. 전후에 떠돌며 살던 그들이 지금의 이스라엘 지역에 돌아와 나라를 세웠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유대인뿐만 아니라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요. 이스라엘 건국은 마치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일부 주민들이 아파트 단지를 건립하더니 점점 규모를 키우는 형국이라 그곳의 과거사를 자세히 알지 못해도 신·구 주민 간 갈등이 불가피할 거라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난민, 그리고 그들 편을 든 이웃 아랍 국가들 간 갈등과 무력 충돌이 이어졌습니다. 미국은 그동안 철저히 이스라엘 편을 들었습니다. 

항구적 이스라엘의 안전보장과 중동지역의 평화를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라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는 인식이 점차 미국 조야에 퍼지게 됩니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와 이스라엘이 병존하는 ‘양국 방안(Two-state solution)’이 대표적인 해결책으로 널리 지지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건국 때 이미 UN에서 나온 방안이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습니다. 국가를 세우려면 땅과 정부가 필요합니다. 어려운 세부 사항들이 많지만 두 가지 조건 중 땅을 마련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정착촌을 확장하여 미래 팔레스타인국의 영토를 잠식하지 말아야 하고, 새로운 나라의 국정을 담당할 기존 요르단 강 서안 지구(웨스트 뱅크, West Bank)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과 같이 중동에 능통한 전문가들은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가 양국 방안의 김빼기 장본인이라고 신랄히 비판합니다. 정착촌 확장을 지지하고,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 세력에 유화적 태도를 보인 반면 서안 지구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무시하여 대표성을 약화했다는 것이죠. 작년 일종의 유대교 신정(神政)국가를 꿈꾸는 극단 세력과 손잡아 1996년 이후 6번째로 총리직을 꿰찼습니다. 

유화적 아랍국들과의 교류를 확대하며 팔레스타인 국가 없이도 이스라엘은 안정된 평화를 구가할 수 있음을 과시하려 했지요. 급기야 지난 9월경에는 중동지역 수니파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와 외교관계 수립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상극으로 여기는 시아파 이슬람 국가 이란은 이런 꼴을 보지 못합니다. 10월 7일 이란이 통제하는 가자지구의 하마스는 이스라엘로 잠입해 대규모 테러를 감행해 이런 흐름을 단번에 역전시킵니다. 결국 이번 가자 전쟁은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는 이스라엘의 항구적 평화가 불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우크라이나 지원 거부, 미국 공화당이 푸틴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권력욕이 네타냐후를 능가하는 사람이 온전히 살아남는 정적이 없는 러시아의 독재자 푸틴입니다. 그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조짐이 없습니다. 사실상 종신 대통령인 푸틴은 전권을 거머잡은 독재정권이 선거와 여론 때문에 우크라이나 지원 피로에 시달릴 미국과 유럽보다 더 큰 희생을 감수할 수 있어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계산입니다. 올 가을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이 별 성과를 보이지 않자 서방의 피로감이 커진 듯합니다. 하지만 얼어붙은 우크라이나에서 무고한 민간인이나 나라를 지키려는 군인들의 희생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대 지원국 미국의 바이든 정부가 지원을 이어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최신 지원안을 의회에서 막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이 멕시코와의 국경에 불법적으로 입국하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상황을 문제 삼으며 ‘뭐가 중요헌디?’하고 있지요. 트럼프 지지자들은 미국이 침공 당하고 있는데 먼 나라 전쟁에 왜 많은 돈을 쓰느냐고 불만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부터 미국 내 중남미 출신 갱단을 예로 들며 불법입국자들이 미국 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선동했습니다. 요즘도 공화당 대선 후보들이 불법입국자들을 10/7 이스라엘 테러를 일으킨 하마스에 비견하며 미국 유권자들을 겁주고 있지요. 

2021년부터 급증한 멕시코와의 국경을 통한 불법입국자 행렬이 줄지 않고 있습니다. 망가진 나라를 탈출하려는 베네수엘라와 중남미 사람들에 더해 최근에는 중국 사람들까지 이 행렬에 가세하고 있다고 합니다. 난민을 분별하는 기존 절차가 불법입국자가 너무 많아 과부하가 걸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추방하면 끝나는 이들을 탱크와 미사일을 동원해 이웃 나라를 유린하고 있는 러시아 군인에 비교하는 것은 사기(詐欺)이지요. 러시아 침략군에 대응하려면 상응하는 살상무기가 필요합니다. 무력으로 국경을 변경하려는 푸틴의 시도가 용인되면 당장 중국과 북한의 야욕이 커질 겁니다.

큰 풍채가 허영심과 욕심으로만 꽉 차 있고, 푸틴과 같은 무자비한 독재자를 존경한다는, 도덕이나 역사의식이 전혀 없어 보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벌써 내년 대선의 공화당 후보인 양합니다. 한때 그의 비서실장이었던 존 켈리에 따르면 트럼프가 ‘히틀러가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합니다. 심각한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만약 당선되면 자신에 대한 연방정부의 제소를 취소하면 그만입니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가 공화당을 포획한 상황을 감안하면 그가 대선에 나설 개연성이 높은데 당선되면 재임 시절의 절제(?)를 철저히 뒤집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상상하기도 싫은 미래입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

철학에 어두운 필자는 몇 년마다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의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와 포퍼(Karl Popper, 1902~1994)의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를 읽습니다. 나의 세계관·역사관에 크게 영향을 미친 책들인데, 특히 경이로운 것은 두 책 모두 1940년대 중반에 출판되었다는 점입니다. 저자들이 옹호하는 이성적 판단과 개인의 자유가 철저히 짓밟히고, 전체주의 득세, 세계 대전의 어두운 서곡과 가공할 본극이 이어지던 때입니다. 특히 유럽에서는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무솔리니-스탈린 주도로 처참한 대규모 살육과 국가와 사회의 해체가 진행되던 때입니다. 절망적 시기에 러셀과 포퍼는 인류 대참사를 가능하게 한 서양의 생각의 흐름과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정리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암울해 보이는 세상사에 좌절감을 느끼는 자신을 보며 사회과학도로서 이들을 귀감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다독여봅니다. 

조촐한 장례가 친구의 배려로 기독교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위안을 느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종교에 연유한 이 크리스마스 절기에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위안을 주는 것도 같은 맥락일 듯싶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어려운 상황에 있는 모두에게 따뜻한 마음과 온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Dona nobis pac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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