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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고 싸우다
임철순 2023년 12월 21일 (목) 00:00:55

나는 집에서 가까운 헬스센터에서 거의 매일 운동과 목욕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운동이라고 해봤자 대충 엉터리이지만, 그래도 요즘은 건강을 위해 저금하는 셈 치고 잘 해보려고 애를 쓰는 편입니다. 검찰 조사를 받게 된 사람들이 찌그러진 표정으로 흔히 하는 말 그대로 ‘성실하게’ 운동에 임하려 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목숨을 건 것처럼 치열하게 역기를 들거나 실내 트랙을 걷는 모습을 보면서 반성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마음을 먹었다가도 운동 후 목욕을 하러 들어가면 기분을 잡치곤 합니다. 눈에 거슬리는 꼴불견 진상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휴대폰 갖고 들어가지 말라는데도...
수건 바구니와 운동복 바구니가 이렇게 따로 있는데도...

탕 입구에는 휴대폰 갖고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여져 있는데도 탕에 몸을 담그고 휴대폰을 보며 킥킥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걸 갖고 들어가 물에 안 젖게 잘 간수하고 챙기는 게 나는 신기합니다. 하지만 혹시 볼품없는 내 몸매를 찍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불쾌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 몰상식한 이를 보고 사우나 측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어 안내문을 붙여 놓았는데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또 땀에 젖은 운동복과 젖은 수건을 넣는 바구니가 각각 따로 있는데, 아무데나 던져 넣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사우나의 직원 한 명은 뒤섞인 수건과 운동복을 분리하는 게 정말 성가시고 짜증날 텐데도 매일 묵묵히 그 일을 하고 있더군요. 

그런 종사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목욕탕 이용자들의 행태가 정말 가관입니다. 화장실에서 응가를 한 뒤 물도 안 내리고 밑도 닦지 않고 나와서는 샤워도 하지 않은 채 탕에 들어가는 놈도 있답니다(윽, 더러워! 밑을 닦지 않은 건 어떻게 아는지 모르지만...). 

어떤 젊은 놈은 입술에 루즈를 칠하고 팬티도 빨간 여성용을 입고 온답니다. 그것도 참 거시기한데, 주로 아침에 일찍 오는 이 녀석은 사람이 적은 틈을 타서 스킨로션, 밀크로션을 온몸에다 맥질하듯 도배질하듯 마구 바른다는군요. “모든 사람이 함께 쓰는 건데 그러면 되느냐?”고 말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답니다. 맥질은 원래 흙을 이겨서 마당을 고르게 바르는 걸 말하는데, 그렇게 로션을 지 몸에다 처발라댄다는 거지요. 

나는 몇 달 전, 수건에다 코를 풀고 바구니에 던져 넣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니, 왜 수건에다 코를 풉니까?” 하고 따졌습니다. 그 남자는 미안해하기는커녕 자기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거 어차피 빨 거 아니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건데, 집에서도 수건에 코를 푸세요?” 했더니 나를 째려보며 “어차피 빨 건데, 별 희한한 사람 다 봤네.” 그랬습니다. 그러더니 주위 사람들이 내 편을 드는 것 같은 눈치를 보이자 뭐라고 궁시렁거리며 슬그머니 저쪽으로 가버렸습니다. 싸움도 잘하지 못하는 주제에 벌거벗고 대판 싸우나 하다가 안도했습니다만, 이긴 것 같지도 않고 정말 기분 더러웠습니다. 헬스센터 측이 세탁을 철저히 하지도 않는 것 같아서 더 그랬습니다. 

그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샤워를 하고 나와 젖은 수건을 아무데나 놓거나 버리고 걸레처럼 발로 질질 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선풍기로 머리를 말리다가 켜놓고 그냥 가는 사람들도 참 많습니다(지네 집 거면 그렇게 하겠어?). 

나는 켜져 있는 선풍기만 보면 틀림없이 버튼을 눌러 끕니다. 물이 질질 새는 샤워기도 꼭 잠그지 않으면 괜히 꺼림칙합니다. 러닝머신의 경우에도 운동하며 TV를 보다가 그대로 켜놓고 가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눈에 띄는 대로 끄곤 합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다고 헬스센터 측이 살뜰하게 날 찾아내서 표창하거나 이용기간을 연장해주지도 않을 텐데 말입니다. 

하기는 헬스센터 측의 운영이 부실하고 시설물 유지 보수가 서투르고 성의가 없어 이용자들이 함부로 하는 점도 있습니다. 개선할 점을 이야기해도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고장 난 샤워기를 제때 고치지 않는 식이니 사람들이 막 다루는 거지요. 나는 개어둔 운동복을 입고 보니 바지에 마스크가 들어 있어 ‘이 사람들이 세탁을 제대로 하지 않는구나’ 하고 의심한 적이 두 번 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공중도덕에 무지하고 물건을 아끼지 않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요즘 걸핏하면 K머시기라고 K를 갖다 붙이던데, 이러는 게 K목욕인가요? K목욕은 고사하고 벌거벗은 사람들끼리 싸우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나 없으면 다행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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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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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용 (220.XXX.XXX.57)
참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사소한 행동인거 같지만, 모든 사람들이 임Columnist의 지적적처럼
공중도덕에 무지하고 자기만을 생각하고 남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빨랑 저승으로 가야만 밝은 세상이 되겠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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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1 11: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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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20.XXX.XXX.222)
달라져야 할 사람들 정말 많지요. 아기 때부터 잘 배워야 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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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1 16:48:56
0 0
유근 (220.XXX.XXX.179)
저도 임선생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이런 의식 수준으로는 선진국 국민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까지 거기에 동조할 필요는 없겠지요. '나 하나 붉어서 산이 붉어 지겠느냐. 너 붉고 나 붉으면 산이 붉어 지겠지' 하는 시인의 심정으로 노력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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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1 10: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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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220.XXX.XXX.222)
開花天地紅,꽃이 피니 천지가 다 붉어진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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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1 16: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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