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식’을 찾아 먹습니다. 저렴식을 파는 식당에 가면 그 집 메뉴와 가격을 사진 찍어 옵니다. 엊그제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연한 고기 듬뿍 들어 있는 진국을 소주까지 곁들여 먹은 광화문의 설렁탕집에서도 벽에 걸린 메뉴판을 찍었고, 그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들른 동네 우동집에서도 찍어 왔습니다.

왼쪽) 2024년 1월 서울 한복판에 9,000원짜리 설렁탕집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오른쪽) 몇 년째 우동값이 8,000~9,000원인 동네 우동집 젊은 주인은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값을 안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올리면 손님이 줄 게 두렵다는 뜻으로 읽혔다.

나와 친구들이 좋아하는 ‘저렴식’은 ‘저렴(低廉)한 음식’입니다. 소금을 덜 넣어 건강에 좋다는  음식은 ‘저염식(低鹽食)’, 우리가 찾는 음식은 값싼 ‘저렴식’입니다. 아직은 나와 친구들만 쓰고 있는 이 말은, 저렴식 찾는 분들이 적지 않으므로, 곧 유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렴식 파는 식당이 반가운 이유는 외식비가 너무 올랐기 때문입니다. 정말 많이 올랐어요. 설렁탕 냉면 삼계탕 순두부 삼겹살 감자탕 치킨 등 대중적 단품 메뉴들이 우리의 ‘심리적 외식비 마지노선’인 1만 원을 넘어선 건 벌써 오래고 어떤 것들은 조만간 2만 원도 뚫을 기세입니다. 사교에 필요한 소줏값까지 보태면 ‘N분의 1’이 2만 원을 풀쩍 넘어설 때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아직 1만 원 안 넘은 짜장면과 김밥, 라면이 있긴 합니다만, 짜장면은 탕수육에 소주 혹은 배갈을 같이 먹어야만 완성된 식사가 되니 이 모두 합하면 인당 1만 원 넘어가고, 김밥과 라면은 사교적 자리에서 먹을 메뉴는 아니지요. 김밥 전문집에서 노인들이 김밥 두어 줄과 라면 각 한 냄비씩 시켜 놓고 엉덩이 무겁게 오래 앉아 시국까지 논하면 일터와 독서실 같은 곳에서 할 일 열심히 하다 끼니 때우러 들른 직장인과 학생들 발길 돌려놓기 십상일 겁니다. 나이 든 사람들이 해서는 안 될 일이지요. 업소 물을 흐려서는 안 되는 겁니다.

식당 하는 사람들은 농수축산물 값이 오른 데다가 임대료, 인건비도 전보다 비싸져서 값을 안 올릴 수 없다지만 이렇게 마냥 올리기만 하면 외식하러 나서는 사람도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장사는 더 안되는 거겠지요? 경제의 악순환, 바로 이런 겁니다. 슬금슬금 골병들어 푹 주저앉는 겁니다. 이 와중에 “일본 음식이 환율 때문에 가성비 최고다”, “베트남과 타일랜드도 음식 좋고 값싸다”라며 휙 떠나는 사람들이 꽤 있습디다만 국민연금에 주택연금 기초연금 따지며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휙 떠날 수 없지 않겠어요? 

“물가, 물가” 그러지만 외식비를 포함한 식품비만큼 몸에 와닿는 물가는 없습니다. 옷이야 있는 것 입으면 되고 영화는 TV로 때우면 되나, 음식값-외식비는 오르면 바로 분노를 일으킵니다. 그러니 식품비를 낮추는 게 물가를 잡는 겁니다. 이게 잡히면 나라가 동요하지 않습니다. 정치 행사장에서 칼부림이 벌어지고 그런 것이 나라를 또 두 쪽으로 나누어 온갖 상호비방, 물어뜯기로 몰아가는 것도 나라가 안정되지 못한 탓일진대, 그것은 결국 물가가 올라 먹고살기 어려워진 연고라고 해도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작년 말, 영국에서는 ‘Eat Out to Help Out’ 정책을 다시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논란이 있었다는군요. “외식해서 도와주기”라는 뜻쯤으로 이해되는데, 코로나19가 기승이던 2020년 영국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타격을 막심하게 받은 자영업자들을 위해 10월 한 달간 이 제도를 시행했습니다. 내용은 매주 월, 화, 수 사흘에는 식당과 퍼브(Pub. 선술집이라고 번역들 하더군요), 카페 등 접객 업소의 음식과 비알코올 음료의 가격을 50%, 고객당 최대 10파운드(약 17,000원)까지 할인해주는 겁니다. 물론 나머지 50%는 정부가 식당에 지급했지요. 행사가 끝난 후 정산해 보니 한 달 동안 팔린 끼니는 1억6,000만 끼니, 자영업자들이 정부에서 받은 총액은 8억4,900만 파운드(1조4,330억 원)였다고 합니다. 이 정책으로 유권자들의 지지를 좀 받았던 게 안 잊힌 듯 수낵 총리의 영국 정부는 경기가 나빠지자 작년 12월 ‘외식해서 도와주기’를 도입할 걸 검토했다는군요. 

‘저렴식’이 사라지는 이즈음, 우리 정부도 이런 외식촉진 혹은 외식장려운동을 펼치면 안 될까요? '정교하게 프로그램을 짜서 박력 있게 추진'하면 불경기에 짓눌린 자영업자들 좋고 노인들은 주머니 사정 덜 걱정하게 돼서 좋은 외식촉진정책! 누가 압니까? 식당들 손님 더 모으려 경쟁 벌일 테니 K푸드 수준도 더 높아지지 않겠어요? 지난 2020 총선 직전에 당시 정부가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뿌렸잖아요. 지금 야당이 180석 가까운 의석을 차지, 되는 것 안 되게 하고, 안 되는 건 되게 하는 전능한 힘을 갖게 된 데는 이 재난지원금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없지 않은 만큼 총선 앞둔 지금, 명분 좋겠다, 실속도 작지 않은 ‘외식으로 도와주기’, '외식촉진운동'을 우리도 한번 해볼 만하지 않나요? “배부른 돼지, 배고픈 소크라테스” 운운할 거 없이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때 나라님이 '엄지척'인 겁니다. 

어떤 노인들이 ‘노인카페’를 만들 생각인가 봐요. 젊은 아이 엄마들이 육아, 교육, 남편과 시댁 이야기 등등 살아가는 모습을 서로 털어놓고 위로하는 ‘맘카페’처럼 늘그막의 애환을 서로 '공유하고 힐링하는' 온라인 카페가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고 간다는 거지요. 노인카페가 문을 연다면 나는 내가 찍은 저렴식 식당을 열심히 찾아내 메뉴 사진을 식당 소개와 함께 모두 올릴 겁니다. 먹방과 맛집만 알려줄 뿐 저렴식은 소상히 소개하는 언론은 없으니 직접 찾아 나설 수밖에 없지 않나요.  

자유칼럼의 글은 필자의 개인 의견이며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