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쉬클로프스키를 비롯한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서 시작한 문학 이론인 ‘낯설게 하기’를 소개하며 르네 마그리트, 베르톨트 브레히트를 다루었지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입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현 체코)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글을 쓴 이 유대계 천재 작가를 소홀히 할 수 없겠지요. 그러고 보니 올해가 카프카 별세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60년대 중, 후반 대학교를 다니며, 전공이 전공인지라, 친하게 지낸 세 사람이 있었답니다. 토마스 만과 헤르만 헤세,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 괴테와 실러, 하이네도 있었지만, 두 분은 오랜 조상뻘이라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어요. 세 사람 중 토마스 만은 기골이 장대했고, 헤르만 헤세는 지나치게 자폐적이어서 살갑지 않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친구는 프란츠 카프카! 바세도우씨병에 걸린 것처럼 퀭한 얼굴, 튀어나온 눈동자에 비쩍 마른 체형의 카프카가 그 무렵 나의 모습과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165cm 어림의 작은 키에 몸무게도 50여 kg밖에 안 나갔던 나의 모습과. 

대학 생활 내내 카프카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친구라기보다 나포되어 포로로 살았다는 표현이 옳을는지도 모르겠군요. 돌이켜보면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인한 젊은 시절의 궁핍한 내 삶은 서사라고 할 수도 없는 남루하고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의 집합이었답니다. 정신풍토는 황량했고, 남루한 의식은 가문 날 척박한 들판의 두더지처럼 숨을 곳을 찾지 못했어요. '자유의지'와 '현실의 질곡' 사이에서 갈등하던 내게 카프카는 위안이 되었을 거예요. 그로 인해 고민이 더 깊어졌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침대에서 불안한 꿈으로부터 깨어났을 때 한 마리 흉측한 벌레로 변해 있었다...’로 시작하는 카프카의 <변신(Die Verwandlung)>을 처음 대했을 때의 낯섦과 놀라움을 결코 잊지 못하겠어요. 사람이 벌레로 변한다고? 아니, 어떻게? 그보다 왜? 책을 읽어 내려가며 의문은 중첩되었습니다.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는 왜 자신이 벌레로 변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고 출근 시간에 늦을까 봐 걱정만 하는 것일까? 지극정성으로 위하는 가족은 왜 그를 ‘벌레 보듯’ 무시하고 죽음에 이르게끔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내치는 것일까? 그레고르는 아버지기 던진 사과가 몸에 박힌 채 교회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숨을 거둡니다.

카프카가 난해하다고 고개를 젓는 사람이 많습니다. 카프카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문학사가(文學史家) 벤노 폰 비제(Benno von Wiese, 1903~1987)조차 “카프카는 다만 해석되지 않음으로써 해석될 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으니까요.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어불성설의 흐름이 이어지고, 결말도 유야무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용의 함의가 깊고 여러 층위로 읽힌다는 특징도 있죠.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보면 카프카는 낯설지언정 어렵지는 않습니다. 작품마다 배경과 스토리는 다르지만 주제가 한 가지로 귀결되거든요. ‘원하지 않는 부조리한 상황에 자기도 모르게 내던져진 인간존재의 소외와 불안!’ 그래서 까뮈나 보르헤스 같은 작가들이 카프카를 ‘실존주의 문학의 비조(鼻祖)로 칭송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카프카는 '고독의 3부작'으로 일컫는 <성> <소송> <실종자(아메리카)>를 비롯, 그레고르 잠자가 나오는 중편 <변신>, 게오르그 벤데만이 나오는 단편 <선고(판결)> 말고도 50여 편의 소품 산문(<작은 우화> <돌연한 출발> 포함)을 남겼는데 작품 모두를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중 한 작품을 소개할게요.

’인디언이 되었으면! 질주하는 말잔등에 잽싸게 올라타,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대지 위에서 거듭거듭 짧게 전율해 봤으면, 마침내는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실은 박차가 없었으니까, 마침내는 고삐를 집어던질 때까지, 실은 고삐가 없었으니까, 그리하여 눈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풀이 깎인 광야뿐일 때까지, 이미 말 모가지도 말 대가리도 없이.’ -카프카, <인디언이 되려는 소망>

이 짧은 글을 대학교 때 읽고 몸체도 없는 말 잔등에 올라 박차를 가하는 유령의 모습을 나와 동일시했던 듯해요. 정한(精悍)한 인디언의 우스꽝스런 모습과, 그 시절이야 누구나 힘들었지만, ’가난이 가진 것의 전부’여서 점심 굶기가 하루 일과였던 1960년대 말의 초라한 나를 말이에요. 철 지난 메모를 들추니 이런 중얼거림이 나오는군요. “책만 있다면 노트는 빌리면 되는데 연필(볼펜은 언감생심)이 없단 말이야.” 요새 ‘영끌족’ 젊은이들 같으면 이렇게 한탄할는지도 모르죠. “돈만 있다면  집은 구하면 되는데 계약금이 없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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