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평생이 참 길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하룻밤 꿈처럼 짧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요. 어쨌거나 돌아다보니 무척 고단한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군요. 특히 나처럼 인간관계가 서투른 사람에게는 힘들었던 세월이었다 싶은 요즈음입니다.  

아는 이 없는 타국에서 뜻하지 않은 친절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오랜 시간 일본 방문 경험 중 특히 이번 여행길에서 받았던 친절함은 잊을 수 없습니다. 병원 진찰과 치료차 일본에서 한국을 두번 연속 방문한 후 2월 일본으로 떠나기 이틀 전부터 심하게 앓기 시작했습니다. 음식과 물, 침까지 삼킬 수 없을 정도여서 과연 이 몸으로 캐나다까지 돌아갈 수 있을까 싶어 우려했습니다만, 예정에 있었던 작은 도시 오다와라의 온천행을 취소할 수 없던 상황이었기에 그냥 강행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도착 당일 밤에 응급병원으로 가야 할 만큼 심하게 아팠지만 참다가 다음 날 아침 그 도시의 작은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았습니다. 외국인 환자이지만 세심하고 친절하게 봐주는 젊은 일본인 의사(영어도 잘하는)의 모습에 매우 감사했고 두번의 방문과 함께 약 처방까지 받아왔지요. 진료비와 약값도 한국 병원에 비해 매우 저렴했습니다. 

	오다와라 (小田原)성

첫 진료를 끝냈던 날, 오다와라 역 앞에서 택시를 이용했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택시를 타야만 했는데 택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버스도 없고요. 몸이 정상이 아니라 고통에 시달리면서 큰길을 따라 걸으면 있겠지 싶어 여기저기 큰 길만 찾아 한 없이 걸었지만, 한 시간을 넘게 걸어도 어떤 대중교통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다와라(小田原) 역까지는 너무 멀어 어쩌면 호텔 셔틀버스가 끊기는 시간까지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 불안불안했고 무서워졌지요. 그러다 발견한 쇼핑센터에 가면 있을까 했으나 거기도 택시는 없었습니다. 그때 세 명의 젊은 일본여성들이 나타났습니다. 짧은 일본어 영어로 사정을 얘기하며 전화로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고 하자 자동차를 소유한 여성이 오다와라역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것입니다. 역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여서 미안했는데 친절한 세 명의 여성들과 잠깐 수다를 떨다보니 오다와라 역에 도착했습니다. 나는 그날 미아가 될 뻔했는데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운전해준 여성의 전화번호를 받고 작별을 고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진료를 받던 날엔 아예 병원 옆에 있는 약국의 약사에게 지난번 방문에 곤란했던 사정을 말하고 택시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키도 훌쩍 큰 남자 약사는 약국 밖까지 나와 같이 택시를 기다려 주다가 내가 택시를 타고 난 후에도 돌아다보니 두 팔을 크게 흔들며 서 있어 나도 손을 흔들며 떠났습니다. 

12월의 일본 체류 중에 도쿄 중심가에서 한 시간 거리의 세타카야쿠(世田谷区)를 찾았습니다.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 1909~1948, <인간 실격>의 저자)가 연인과 함께 자신의 생명을 마감한 곳으로 미타카(三鷹)시의 다마가와조스이(玉川上水)이라는 하천을 따라 오사무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로 했습니다. 돌아오는 도중 로쿠고엔 쪽으로 향하는데 길을 알 수 없어 한 여성의 도움을 받게 되었지요. 그녀는 로쿠고엔까지 따라와서 고엔(公園, 공원)의 내력을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녀가 내가 한자와 일본어로 된 비석의 내용을 읽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내 일본어 수준은 형편없는 초보도 못 되는 것이지만요. 로쿠고엔을 떠나는데 그녀가 이전에 내렸던 역보다 다음 역으로 가서 돌아가는 게 빠르다는 조언을 하며 역까지 더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다시 도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져 돌아오며 딸 연배인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인 부인이 준 선물 포장

오랜 시간 한 사람(일본인 남성)의 이름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남편에게는 40년 동료이자 지인이어서 형제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자주 들게 했던 사람으로 그 부부의 소소한 소식을 가끔 듣게 되니 궁금했습니다. 근래 아픈 나날이 점차 많아져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편이 이 사람과라도 외로움을 나눌 수 있지 않겠나 싶어 나는 그 사람과 그의 아내를 한 번 보고 싶어졌습니다. 미국에서 오래 살던 부부가 일본 이즈(伊豆)반도로 이사를 했다 하여 오다와라 역에서 한시간 거리의 기차를 타고 갔던 것입니다. 남편이 말할 때마다 받았던 느낌대로 그나 그 부인이나 모두 친절하고 배려심이 깊어보였습니다. 그런데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녀가 내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받은 선물도 많지만 그중 그렇게 탁월하고 창의적인 선물 포장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녀의 정성과 세심한 미적 감각이 나를 감동하게 하였거든요. 그녀는 어떻게 내가 HOT PINK(핫 핑크) 와 INDIAN PINK(연한 핑크)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 그 배려에 깜짝 놀랐습니다. 나의 일본어 실력이 영어보다 나았다면 그녀에게 한없는 칭찬을 해줄 수 있었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친절과 배려는 우리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중요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는 불친절이 몸에 밴 사람들이 많습니다. 삶이 각박하니까, 세상이 그렇게 변해서, 나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야, 등 핑계나 이유가 많지요. 그래서인지 아름다웠던 한국인의 정서가 많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한국 사회가 이번 방문길에 전보다 더 무서워진 것이 이유였을까요? 그에 비해 일본에서는 평화롭고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국인 한국에서 받은 상처를 일본에서 치유하게 되는 현실이 슬프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