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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필요할 때 -『대성당』
김이경 2008년 07월 22일 (화) 12:46:40
운전을 잘한다는 건 잘 달리는 게 아니라 제때 잘 멈추는 거라고들 합니다. 멈추기가 어렵기는 말[言]도 운전 못지않습니다. 청산유수로 지껄이다가 문득 튀어나온 한마디에 얼굴이 뜨거워진 경험,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겁니다. 그래서 깊이 생각하고 말을 하라지만, 사실 살다보면 깊이 생각해도 하기 힘든 말이 있습니다. 가령 위로의 말이 그렇습니다. 위로를 받고 싶은데 오히려 상처를 후벼 파고 부아를 돋우는 경우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끙끙 앓고 있는 사람에게 “내 이럴 줄 알았어, 조심 좀 하지” 하고 훈계를 하거나, 이 병으로 죽는 일도 있다고 겁을 주거나, 믿음이 없어 죄 받는 거라고 설교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겐 『부탁이니 제발 조용히 해줘』라는 책을 건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들을 위로라고 듣고 있어야 하는 ‘가엾은’ 이들에게는 같은 작가의 『대성당』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지독히 과묵한 작가가 보여주는 위로의 진경(眞景)이, 요설에 지친 마음을 달래줄 테니까요.

두 책의 저자인 레이먼드 카버는 제가 알기로 장편을 쓴 적이 없습니다. 그는 형용사도 부사도 배경도 심리도 모두 최소한으로 축소된 건조한 문장으로, 아주 짧은 단편소설을 썼습니다. 스물이 되기 전부터 제재소 노동자로 병원 수위로 힘들게 일하면서 글을 썼으니, 장광설을 늘어놓을 틈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 덕에 문학이 침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참 고마운 일입니다.

열두 편의 단편이 실린 『대성당』은 카버의 다른 소설집에 비해 읽기가 좀 수월합니다. 군살 없는 문체야 한결같지만, 냉정하게 느껴지던 이전 작품들에 비해 따스하고 긍정적인 시선이 읽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이죠. 그런 변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예전에 썼던 「목욕」이란 소설을 고쳐 쓴 것인데, 결말의 차이가 달라진 작가의 시선을 한눈에 보여줍니다.

한 아이가 생일날 뺑소니사고를 당합니다. 외상이 없기에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아이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집니다. 기도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흐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무심히 넘겼던 것들이 모두 엄청난 무게로 다가옵니다. 사소한 몸짓에서 희망의 단서를 찾기도 하고, 이웃의 불행에서 불길한 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상상이 혹 끔찍한 결과를 부르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책망합니다.

내가 이고 선 하늘이 무너지고 내가 딛고 선 땅이 꺼집니다. 오로지 나만, 다른 이들의 세상은 멀쩡한데 오로지 내 세상만 무너져 내립니다. 미움과 원망만이 가득 찬 마음, 그 캄캄한 절망 앞에 카버는 한 조각 빵을 내밉니다.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라면서요. 아이의 부모는 검은 빵을 먹습니다. “형광등 불빛 아래로 들어오는 햇살 같은” 빵을 배가 터지게 먹습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희미한 햇살이 비칩니다.

먹은 밥그릇 수가 늘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사람은 밥 힘으로 산다는 겁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밥상은 천 마디의 웅변을 무색케 하는 위로이고 격려입니다.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염려와 사랑으로 지으신 밥을 먹으며 자식들은 잃었던 기운을 찾고 버렸던 희망을 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다시 살 만해집니다.

그렇게, 삶을 아프게 하는 것도 그 삶을 치유하는 것도 모두 별것 아닌 것 같은 일들이라고, 카버는 말합니다. 고장 난 냉장고가 어둑한 현실을 드러내기도 하고(「보존」), 달갑잖은 맹인 손님이 감춰진 시야를 열어주기도 하며(「대성당」), 집을 비우라는 한마디에 기껏 결심한 새 출발이 무너지기도 합니다(「체프의 집」). “뭐 그만한 일로?” 하신다면, 당신은 위로에 서툰 사람입니다. 작고 사소한 일로 사람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위로를 핑계 삼아 남을 모욕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남을 위로하되 위로받는 일은 생기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불행이 나만 피해가기를 바란다는 것도 어설픈 짓입니다. 닥칠 일은 닥치고 겪을 일은 겪으면서 세월은 흐릅니다. 그런 세월을 보내고 타인의 아픔에 눈을 뜨면, 카버가 보여주었듯이 슬픔을 위로하는 것은 또 다른 슬픔임을 깨닫게 됩니다. 살아가는 데는 슬픔조차 힘이 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쩌면 그게 슬픔이 주는 유일한 위로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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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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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 BONGHEE (71.XXX.XXX.3)
저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읍니다.그리고 위로도 했던것 같아요.
많은 경우에 가만히 곁에 있어 주는 것 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제게 가장 힘이 되었든 위로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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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7 11: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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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리 (24.XXX.XXX.49)
저런 위로는 안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했던 힘든 기억이 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 상황에서, 어미가 자식을 잃었을 때 그런 위로를 할 수 있을까 했던, 침묵은 가장 훌륭한 위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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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4 21: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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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문희 (211.XXX.XXX.43)
어떻게 위로할까 그런생각 하면서 만나지만 막상 만나고 헤어지면 내가 제대로 위로했나 마음은 편안하게 해주었나 라는 생각을 항상하게 됩니다 다시한번 일깨워주는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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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4 17:3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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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장춘 (211.XXX.XXX.43)
편집주간의 일을 하신다 하니 아름다운 수고를 하시고 계심을 알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저처럼 어설픈 잡문이나 쓰는 작가인가 했는데 그것은 아니심을 다행으로 알겠습니다. 작가들이 책임성이 높은 일을 해 주신다면 마음으로부터의 감사를 보내드릴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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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3 0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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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아연 (202.XXX.XXX.137)
저 자신을 위로하는 말로다가 '우선 먹고 보자' 할 때가 많지요. 제대로 위로하고 있었던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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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2 14: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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