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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보다 도심을
김희승 2008년 09월 20일 (토) 19:14:53
어쩌다 옛 친구를 만나기 위하여 인사동 골목이나 피맛골을 찾습니다. 종로 거리를 지나가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혼란스러움의 극치를 보는 듯합니다. 좁은 보도 한편에는 본래의 상가(商街)가 있고 다른 편에는 노점상 가판대들이 도열하여 ‘노점상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보도가 별로 넓지 않은데다 노점 가판대가 들어서 있고 사람은 북적대어 여간 비좁지 않습니다. 보행자들은 이 사이를 비집고 이리저리 마주 오는 사람들을 피해서 다닙니다. 스치거나 부딪치는 정도는 예사고 뒤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발뒤축을 밟히기도 합니다. 느리게 걷는 노인들 뒤에 걸리면 아무리 바빠도 그 뒤를 벌레처럼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노점상가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떡볶이, 호빵, 군빵, 오징어, 번데기 등 먹을거리에서부터 인형, 장난감, 티셔츠, 운동화, 구두, 장신구 등, 일언(一言)하여 ‘박물노점상가(博物露店商街)’입니다. 작은 가판 리어카 정도가 아니라 트럭만큼 커다란 규모의 가판 장치들이 틈새도 없이 늘어서 있고, 그 뒤편에는 각종 취사도구들까지 늘비합니다.

버스나 차를 타고 가면서 노점상가를 바라보면 가관입니다. 거리 풍경은 너무 심하게 훼손되어 있습니다. 시쳇말로 ‘베려’ 버렸습니다. 누런 천막이나 먼지에 절은 비치파라솔, 그 위에 덧씌워 너풀대는 비닐 커버들, 늘어진 갈대발... 6.25 직후, 달동네에서 흔히 보던 판자촌과 흡사한 모습을 고층 빌딩이 즐비한 도심 속에서 다시 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의 거리는 강북이건 강남이건 무질서 천국입니다. 이것이 국제도시, 동북아 허브를 자랑하는 서울의 풍물이죠. 어떤 서울시 기관이 서울을 일컬어 'Seoul- Soul of Asia'라고 내 건 캐치프레이즈를 본 일이 있습니다. 서울이 '아시아의 영혼' 이라는 말씀인데, 이런 거리 풍물을 가진 서울을 '아시아의 영혼' 이라고 추키기가 민망스럽지 않을까요?

선진국의 대도시에 가 보면 그 거리의 정돈됨과 질서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연히 발이 시도록 걷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서울의 거리와 비교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정돈된 그런 거리를 가질 수 없을까요? 시민들이 즐겨 찾는 쾌적한 거리, 애인 또는 친구들과 맘껏 소곤거릴 수 있는 조용하고 정돈된 거리, 그런 거리를 서울에 만들 수는 없을까요?

파리의 퐁네프다리 위에서였습니다. 깨끗한 다리 위에는 담소하며 혹은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석양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찻소리도 요란하지 않았고 고성을 질러대는 사람도 없어서 이편에서 이야기하면 저편에서 들릴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냥 삼삼오오 다리 위에 주저앉거나 혹은 서서 도시의 저녁 정취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낮선 사람들일지라도 오래된 이웃인 양 친절하게 말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오래 전 일인데도 불구하고 다시 그곳에 가서 그 분위기를 누리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먼 이국 땅덩어리임을 아랑곳 않고 파리의 거리를 동경하는 것은 정돈된 거리, 예술적으로 다듬은 건축물과 조각물, 그리고 친절한 사람들, 거기에 커다란 이유가 있습니다.

서울의 거리, 우리도 이제 정리 정돈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냥 우리 식대로, 이대로가 좋은가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국에 노점상을 허용한다고 언포(言布)한 바 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노점상이 번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연히 무질서와 혼돈과 불편이 뒤따랐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한번 조성된 무질서는 쉽게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주요한 생업 수단인 가판 노점을 정리하자고 하면 큰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촛불 정도가 아니라 민란이 터질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세계의 도시, 서울의 거리를 카오스 상태로 방치할 수 없는 게 아닌가요?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의지가 있는 곳에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일을 꾸며 봄직합니다.
1. 서울의 중심부 또는 사대문 안(이를 도심구역이라 부릅시다)에는 전기차 궤도를 시설하여 전기차 이외의 차량은 출입 금지.2. 도심구역 밑을 지나가는 지하도로 건설. 차량들은 지하도로로 소통하고, 지하 주차장에 유료 주차.3. 종로 등 도심 거리는 보행자 중심 거리. 전기차 궤도는 한편에 별도 설치.4. 노점상은 재래시장과 같은 시장 구역을 조성해서 그곳으로 집중 입주시킴.5. 기존 상가 정비. 민자를 유치하여 수준 높은 상가로 개조 혹은 리모델링.6. 종로 광화문 등의 넓은 거리는 시민 광장으로 조성.

이런 식으로 개조하게 되면, 도심 지역의 보행자는 조용한 전기 차에만 의존하여 통행하게 될 것이고, 노점상은 조성된 시장 구역으로 가게 되어 불만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서울의 거리는 선진국 수준의 쾌적한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또 점진적으로 유적지를 복원하여 관광지로 개발한다면 서울은 서울시민이나 외국인 관광객의 사랑받는 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서울 이외의 다른 도시들도 대체로 이와 비슷한 사정입니다. 그것들도 위와 같은 방법으로 도심 구역을 설정하여 시민의 보행 공간을 정비해야 하리라 봅니다.

다만 엄청난 재원이 소요될 것입니다.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건설은 접고, 대신 서울과 지방 주요도시의 도심을 개발하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상 대운하건설보다는 무질서한 도심 개선이 더 시급한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여러 도시에 동시에 집행하는 국가적 도심 개선공사는 대운하건설 공사만큼이나 어렵고, 대단위 투자가 소요될 것입니다. 하지만 막대한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지고 국가적 이득이 생길 것입니다.

우선, 국민이 반대하는 대운하 건설을 하지 않아서 좋고, 역사에 길이 남을 위업을 달성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카오스 같던 거리 풍경을 정리해서 좋고, 선진국 같은 거리가 바탕이 되어 미래의 관광 대국으로 발돋움하여서 더욱 좋을 것입니다.

누가 할 것인가, 현재의 이 정부가 하면 딱 좋겠습니다.

서울시립대 컴퓨터과학부 교수. 서울대 문리과대학 물리학과 학사, 계산학 석사, 미국 Texas A&M 대학교 전자공학 박사다. <영상인식>, <인공지능과 그 응용>, <PC 어셈블리어>, <Visual Basic>, <미국, 풍요와 탐욕의 두 거울>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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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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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24.XXX.XXX.49)
어쩌면 저와 똑 같은 생각을 하셨는지 반갑습니다. 네 정말 서울도시는 부끄러워
외국인을 초대 할 수 없게 망가졌는데 정부는 가만히 있습니다. 마치 육이오 이후의 때 인 것처럼 노점상 지저분한 도로 등이 판치는 서울은 무정부 도시 같습니다. 어찌 할까요.
큰일입니다. 이런 것 부터 고치지 않고서는 대한 민국은 희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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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8 08: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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