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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가 마음에 안 드세요? -『윤치호 일기 1916-1943』
김이경 2008년 09월 30일 (화) 09:30:16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역사교과서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교과서포럼,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현재의 교과서, 특히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고 주장하자 교육과학부 장관을 비롯해 국방부와 여당 의원들도 교과서 수정에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좌편향이라며 개정을 주장한 내용을 읽다가 한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식민지시기를 언급한 부분인데, 기존 교과서에서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할 능력을 가졌다”고 한 데 대해 “능력을 가졌는지 의문”이므로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방이 되고 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한 지 60여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이런 말을 하다니, 그것도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니, 놀라웠습니다. 그런 시각이 친일을 낳고 민족을 부정하게 한 역사가 엄연한데도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독립할 역량이 안 되니 실력부터 키우자던 사람들이 왜 필경은 친일파가 되었는지, 교과서 대신 역사 자료로 직접 확인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겁니다. 『윤치호 일기』 같은 좋은 자료도 있으니까요.

1880-90년대에 이미 일본, 중국, 미국에서 유학한 조선 최초의 근대 지식인 윤치호(1865-1945)는 개화관료로 독립협회를 이끌었고,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조선 감리교의 대부로 YMCA운동을 주도한 한국의 대표 엘리트입니다. 그의 집안 또한 제4대 대통령 윤보선(종질)을 비롯해 서울대 총장을 지낸 윤일선(종질), 국회부의장 윤치영(사촌동생), 농림부장관 윤영선(장남) 등을 배출한 유력 가문이니, 어느 모로 보나 한국 사회의 주류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윤치호는 특히 한국사에서 보기 드문 기록자였습니다. 그는 갑신정변이 발발하기 전인 1883년부터 시작해 1943년까지 무려 60년 동안 일기를 썼습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인데다 대부분 영어로 씌어져 있어서 읽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히 식민지시기를 발췌한 요약본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3 • 1운동,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겪는 윤치호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919년 3월 1일 토요일 - 1시 30분쯤 거리 쪽에서 군중의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를 가득 메운 학생과 시민들이 ‘만세’를 외치며 종로광장 쪽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진한 젊은이들이 애국심이라는 미명하에 불을 보듯 뻔한 위험 속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1919년 3월 6일 목요일 - …그래서 (나는) 이번 운동에 반대하는 세 가지 이유를 말했다. 1)조선 문제가 파리강화회의에 상정되지 않을 것이다. 2)미국이나 유럽의 어떤 나라도 조선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우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을 것이다 3)약소민족이 강성한 민족과 함께 살아야만 할 때, 약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은 강자의 호감을 사는 것이다.
1920년 8월 14일 토요일 - 조선인들은 쓸데없는 선동을 멈추고 대중의 정신적, 경제적 상황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만세’를 외치는 알량한 거지들이 조선에 독립을 가져다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더 비참한 건, 설령 독립이 이루어지더라도 무지와 가난에 찌든 대중들에겐 독립을 유지해나갈 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3 • 1운동이 일어났을 때 윤치호는 학생과 시민들의 순수한 애국심에 감동하면서도 불가능한 일에 힘을 낭비한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리고 반일감정을 부추기는 일본의 차별정책을 개탄합니다. 일본이 조선에 친절을 베풀면 조선인들도 불만이 없을 텐데 쓸데없는 강압책으로 문제를 만든다는 거지요. 특히 그는 토지조사사업을 비롯한 일제의 경제정책이 조선인의 생활을 갈수록 힘들게 하는 데 대해 분노를 표합니다.

1921년 5월 16일 - 경제위기에 빠진 조선인들을 구하기 위해 당국은 대체 뭘 했는가?… 일본인들의 계획은 조선의 철저한 경제적 고갈을 목표로 하는 것 같다. 조선인들이 최대한 빨리, 최대한 싼값에 자기 땅을 내놓게 하려고 말이다.”

지주였던 윤치호는 토지조사사업과 수리조합 등 일제가 벌인 농업 근대화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특히 땅이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데 분개하면서, 해외 독립운동세력에게 자금을 대느니 그 돈으로 역둔토 등 땅을 사서 지키는 게 더 애국하는 길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는 또 조선 산업의 발전을 막는 일제정책을 비판하며, “일본이 원하는 건 자국의 제조업자들을 위해 조선에서 천연원료를 가져가는 것뿐”(1929.5.10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교과서포럼은 토지조사사업이 근대적 토지소유제도를 확립하기 위한 것이었고, 일제의 공업화정책 덕분에 조선이 근대화되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하지만 윤치호의 기록을 보면, 토지조사사업이 조선의 토지와 식량을 수탈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현행 교과서의 서술이나, 일제의 산업정책이 조선 경제를 왜곡시켰다는 평가가 꼭 편향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런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윤치호는 독립을 꿈꾸거나 일본에 저항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일본이 성공하면 조선에게도 이득이 될 거라며 환영합니다. 그리고 만주에 개입하려는 미국을 비판하면서, 일본이 저지른 범죄는 서양의 기독교 국가들이 선례를 남긴 것이라고 말합니다(1934.11.10일). 미국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한 짓이나 영국이 아일랜드에 한 짓이나 일본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지요.

미국이든 영국이든 일본이든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요 인간은 본래 야비하며 잔인한 동물이라는 비관, 그의 방대한 일기를 관통하는 것은 바로 이런 비관적 정서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그의 비관론은 종교에도 적용됩니다. 그는 세상에 평화가 정착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면서, “인간에게 종교를 줘봐라. 자기와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을 죽이는 명분으로 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그의 비관적 방관주의는 적극적 친일로 바뀝니다. 영미 문명을 동경하던 그였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황인종의 대표인 일본이 백인종의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유색인종을 해방시켜주기를 바랍니다(1941.12.9일). 힘이 정의임을 인정하던 그에게 일본의 힘은 감동적인 것이었고, 그런 일본과 하나가 되는 것은 마다할 일이 아니었지요. 그리하여 그는 내선일체 정책도 창씨개명도 받아들입니다. 조선인 지원병제도도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1943년 5월 16일 일기에서는, 조선인에게 일본 해군 입대를 허용한 제국 정부에게 감사하고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고 적을 정도입니다.

윤치호는 “일본의 통치와 러시아 볼셰비즘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면 전자를 고를 것이며, 그래서 일본의 통치에 조금도 반대하지 않는다”(1934.3.23일)고 피력합니다. 조선은 “똥뒷간 같은 나라”이며, 조선이 독립을 하는 것은 “열두 해 죽은 송장이 춤추고 노래함을 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1889.4.25일)라던 구한말의 인식을 그는 끝내 버리지 않았습니다. 조선 민족에게서 아무 희망을 보지 못했기에, 그에게 선택은 ‘독립이냐 예속이냐’가 아니라 ‘일본이냐 공산주의냐’가 되었던 거지요.

윤치호는 해방 뒤 친일파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행운처럼 찾아온 해방이니 과거는 잊고 다함께 협력하자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비관적 지성과 달리 역사는 ‘행운’처럼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전락이 무능과 부패가 낳은 필연이었다면 조선의 해방 또한 필연일 것입니다. 비관론자들이 종종 잊는 것이 그 점입니다. 독립을 필연으로 낙관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무모한 듯 보이는 그런 낙관이 지성의 비관을 뚫고 미래를 열었다는 걸 역사는 보여줍니다. 부디 그걸 ‘개정’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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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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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완 (211.XXX.XXX.58)
잘 난 사람은 잘 난대로 못 난 사람은 못 난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능력이 있느니 없느니를 누가 판단할 권리와 자격이 있단 말입니까? 기본 인권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이종완
연변 과기대 영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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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1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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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자 (210.XXX.XXX.71)
미군정과 친일파 출신 이승만 휘하의 군경들의 합작에 의해 억울하게 집단 학살당한 어린 아이,아녀자,풀뿌리의 원혼이 아직도 한반도 상공에 떠도는 제주 학살 사건을 조작하려는 음모도...민족 정신을 뿌리채 흔드는 님의 글에 나타난 민족정기 말살 정책도..모두 현정부는 역사 왜곡(뉴라이트란 엽기적 단체의 궤변을 기반으로 하여)에 쏟을 정열과 의욕으로 보다 진취적이고 양심적인 정치,외교,경제 정책에 매진하여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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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30 17: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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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기 (211.XXX.XXX.57)
좋은 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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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30 16: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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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현 (211.XXX.XXX.57)
정말 좋은 칼럼입니다. 마음으로 감사하며 읽었습니다. 우리시대에 윤치호 같은 인물이 너무도 많습니다. 주류가 되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비주류로 몰아 부칩니다. 건승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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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30 16: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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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느 (211.XXX.XXX.57)
지금도 윤치호처럼 이 나라를 폄하하는 '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은 바보가 아니고 '의지의 낙관'은 '지성의 비관'보다 힘이 셉니다. 두려움 없는 자들, 화이팅! 겁많은 배운자들... 쯧 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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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30 12: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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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현 (211.XXX.XXX.57)
잘 읽었습니다. 왜 현실의 겉모습만 보면 안 되는지를 알려주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선생님 관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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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30 12: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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