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蒼厓(창애)를 찾아서<상>
임철순 2008년 10월 13일 (월) 02:04:47
따옴표 속의 인간

燕巖(연암) 朴趾源(박지원ㆍ1737~1805)에 관한 글(07.10.10, 08.02.18)을 두 번 쓰다 보니 두 글에서 언급한 蒼厓(창애) 兪漢雋(유한준ㆍ1732~1811)에 관해서도 焉敢生心(언감생심) 별도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오래 전부터 들었습니다. 그를 잘 알지도 못하고 전문 연구자가 아닌데도 뭔가 숙제를 다 하지 않은 듯한 꺼림칙한 기분이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 蒼厓(창애) 兪漢雋(유한준)  
 
창애는 연암의 라이벌로 인식돼 온 인물입니다. 이순신을 이야기할 때 언급되는 원균처럼, 제갈 양과 주유의 관계처럼 연암을 괴롭힌 악역이거나 주인공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조연쯤으로 치부돼 왔습니다. 20여년 전 그에 관한 학계의 연구를 촉발한 논문 제목이 <박지원과 유한준>(김명호)이었던 데서도 알 수 있듯 창애는 연암의 적이나 들러리로 인용되고 언급돼왔을 뿐 창애 본인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미합니다.

그나마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창애의 말을 인용한 덕분입니다. 하지만 창애가 실제로 한 말은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되게 보게 되며 볼 줄 알면 (그림을) 모으게 되니 그것은 그저 쌓아두는 것과 다르다”였습니다. 사랑을 강조한 게 아니라 잘 아는 것의 중요함을 강조한 말인데, 의도적인 게 아니라도 이런 왜곡과 와전이 창애에게는 늘 따라다닌 것 같습니다.

한 논문(유동재, <저암 유한준의 문학론과 문장론 연구>)에는 “박지원은 목소리를 높였으나 아직 유한준의 대답은 듣지 못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듣고 바르게 옮기는 작업의 일환으로 창애를 연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연암의 문집에는 창애의 글을 통박한 것을 비롯해서 창애에게 보낸 편지들(答蒼厓ㆍ답창애)이 수록돼 있지만, 창애의 문집에는 연암과 주고받은 편지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으로 불리한 데다 연암이 워낙 큰 인물이어서 창애는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채 오히려 지나친 악평을 받아왔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 燕巖(연암) 朴趾源(박지원)  
 
그에 대한 오해나 악평은 ①글쓰기의 본질적 도리를 경시한 채 修辭(수사)에 치중한 擬古文主義者(의고문주의자)였다, 그래서 연암과 대립했으며 결국 연암에게 패했다 ②연암 집안과 산소 문제로 싸우다 원수가 됐다, 그 과정을 보면 인간적으로 아주 못된 사람이다, 이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연암과 창애는 초년엔 문학관의 차이, 중년엔 정치적 대립, 만년에는 山訟(산송)으로 비화돼 원수 같은 집안이 되었다고 정리한 학자도 있습니다

먼저 문학관의 문제-. 창애는 조선 후기 문화의 르네상스라 일컬어지는 18세기에 유명했던 문장가였고, 문장의 가장 큰 특징은 수사의 오묘함과 工巧(공교)로움이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친구의 손자가 쓴 창애의 墓表(묘표)에는 “나이 80세 신미년 7월 28일 卒하였다. 군자가 ‘아, 문장이 쇠미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돼 있습니다. 문학사의 쟁점을 알기 쉽게 정리할 능력은 내게 없습니다. 그러나 평생 지기였던 朴胤源(박윤원ㆍ1734~1799)과의 道-文 논쟁에서도 알 수 있듯 창애는 道文분리론에 입각해 文의 중요성을 더 강조했던 사람이며, 말년에는 그 생각을 크게 바꾸었다는 언급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道와 文의 논쟁은 내용과 형식의 문제, 주제와 기교의 문제 이런 따위일 것입니다. 그러나 창애의 문장성향과 문학관은 전기와 후기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나중에 확연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평생을 문장가로 자부했던 창애였지만 말년에 지은 시에는 ‘농사도 장사도 공인일도 배우지 못하고/지금은 한낱 머리 흰 늙은이로세/여든살 동안 무얼 했나/젊은 시절 늦은 밤까지 부질없이 공력만 낭비했네’라고 한탄했습니다. 다른 글에서는 “(이제 와서) 후회한들 어찌 추구할 수 있을까! (중략) 밤이 고요하여 잠들 수 없어, 지난 시절을 생각해 보니 文道가 골수를 이루지 않았으니 저술은 다만 껍데기일 뿐, 이러한 심사를 안은 채 오래도록 회한을 지속하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저술을 한갓 껍데기(著述徒皮ㆍ저술도피)라고 반성하거나, 스스로 雕蟲(조충ㆍ대수롭지 않은 기예를 일컫는 말)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새가 죽을 때 그 울음이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 그 말이 선하다는데, 창애는 사망 1년 전에 쓴 글에서 연암을 “才品(재품)이 絶高(절고)하고 문장이 저절로 경지를 획득하였으며 儒雅(유아)하고 魁桀(괴걸)한 인물이라 하겠다”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가정적으로 창애는 매우 불운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생애에는 끊임없이 죽음이 이어집니다. 살아가며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겪는 것은 누구나 똑같지만, 창애의 경우는 특히 심했고 慘慽(참척)의 아픔이 컸습니다. 창애는 15세(1747년)에 아버지를 여읜 뒤 그 다음 해 하나밖에 없는 27세의 형을 여의고 자형의 집에 얹혀 살아야 했습니다. 26세(1758년)에는 모친상, 32세에는 6세 된 아들 冕柱(면주)를 잃었고 55세에 장손자 久煥(구환), 그 다음해에 아들 晩柱(만주ㆍ1755~1788)를 잇달아 잃었습니다. 그는 낙담한 나머지 이 때부터 10여년 동안 시도 짓지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 70세 때는 둘째 손자 敦煥(돈환)마저 20세로 요절했습니다.

그의 형이 “선영에 빈 곳이 없으니 좋은 땅을 골라 장사 지내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이행하지 못한 채 사망한 뒤부터, 산소 문제가 창애에게는 큰 짐이 됐던 것으로 보입니다. 풍수지리설에 관심이 많았던 창애는 地官(지관)의 추천으로 썼던 선친 이하 가족들의 묘를 다른 지관의 말을 좇아 십 수년에 걸쳐 차례로 다시 이장할 정도였습니다. 연암 집안과의 산소 다툼은 그가 70세, 연암이 65세 때 벌어진 사건입니다. 연암이 선친 朴師愈(박사유ㆍ1703~1767)를 포천에 이장하려 할 때, 창애는 그곳이 자기 선조 묘의 정자터였다며 묘를 파헤쳐 관을 들어내고, 15세로 요절한 손자의 관을 이미 그곳에 있던 연암의 조부 묘 뒤에 옮겨 놓았다고 합니다. 결국 연암은 시비를 피해 양주로 묘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과정은 연암의 차남 朴宗采(박종채ㆍ1780~1835)가 쓴 <過庭錄(과정록)>에 소상하게 보입니다. 그는 창애가 이런 행패를 부린 것을 젊어서 연암이 창애의 글을 혹평한 데 대한 보복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박종채가 없는 일을 지어내지는 않았겠지만, 산소 다툼에 관한 창애 쪽의 진술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사건이든 쌍방의 말을 다 들어야 좀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조상을 모시는 문제와 산소에 대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집착과 관념을 요즘 시각에서 일률적으로 재단하기는 어려운 점도 있습니다.

창애의 스승의 아들이었던 南公轍(남공철ㆍ1760~1840)은 창애의 문집을 보면서 “初晩(초만)의 구분을 모르면 公(공)을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조지훈이 1960년 3월에 쓴 <지조론>에도 “기녀(妓女)라도 늘그막에 남편을 좇으면 한평생 분냄새가 거리낌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 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창애의 경우도 말년을 잘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암과 창애의 관계를 살피다 보면 그들도 괴테(1749~1832)와 쉴러(1759~1805)처럼, 退溪(퇴계) 李滉(이황ㆍ1501~1570)과 高峰(고봉) 奇大升(기대승ㆍ1527~1572)처럼 나이와 생각의 차이를 잊고 망년(忘年)의 교류와 우정을 나누고, 가르침을 주고 받는 사이로 역사에 남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두 번 더 쓸 이 글이 ‘따옴표 속의 인간’ 창애를 위한 변명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말과 사물은 주어가 될 수 있습니다. 따옴표를 입으면. 모든 인간은 누구나 주어가 될 수 있습니다. 따옴표를 벗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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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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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211.XXX.XXX.129)
제목이 어려워서(ㅎ) 이제사 보았더니 정말 재미있습니다. 다음 편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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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6 18: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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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길순 (211.XXX.XXX.129)
깊이 있고 산뜻하고 해박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 기대하겠습니다. 뻬이징에서 채길순 드림
답변달기
2008-10-13 14: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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