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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의 매화마을
최창신 2009년 04월 08일 (수) 03:10:43
매화 꽃길 5백리 (1) 

매화는 섬진강(蟾津江)을 따라 북상(北上)한다. 꽃과 향기는 고양이의 발걸음처럼 북쪽으로 기어오르고, 강물은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초등학생의 발걸음처럼 찰방거리며 남으로 내려간다.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 농원에서 바라본 섬진강.  
기이한 일이다. 북상하는 꽃을 배웅하는 것인가, 아니면 잠시 머물다 떠나가는 매화가 아쉬워 멀리까지 따라가며 발길을 붙잡는 것인가. 여수 앞바다의 바닷물이 화개장터 근처까지 50여리 길을 강물 아래 몸을 숨기고 하상(河床)을 따라 북상한다. 강물은 위에서, 바닷물은 아래에서 서로 반대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강물과 바닷물의 비중(比重)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재첩이 지천이다.

이 길, 섬진강을 따라 매화가 피어 올라가는 꿈결 같은 길을 꼭 걷고 싶었다. 전남 광양에서 시작하여 화개장터를 지나 구례, 곡성을 거쳐 전북 남원으로 이동했다가 임실까지 이르는 코스.

문제는 타이밍. 다른 명승지나 걷기 좋은 길들은 아무 때나 찾아가도 관계없지만 이 길만큼은 매화가 피기 전이나 지고 난 다음에는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시기를 잘 택해야 한다.

그렇다고 꽃이 절정을 이루었을 때 찾아가서도 안 된다. 수많은 인파, 이들을 싣고 온 대형 관광버스의 행렬, 잡상인들의 극성스러운 마케팅, 이들이 빚어내는 엄청난 소음과 무질서 따위가 ‘추위와 눈발을 뚫고 피어오르는 매화의 정결하고 고상한 이미지’를 휴지처럼 구기고 짓밟아 버릴 게 뻔하기 때문이다.

3월에 접어들기가 무섭게 내 계획을 알고 있는 남도 출신 친구들이 “슬슬 떠날 때가 된 것 같다”고 알람(alarm)시계처럼 재촉하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일기에 관한 보도를 유심히 체크하며 ‘거사일(?)’을 어느 날로 잡아야 할지 궁리했다. 오래전부터 나름대로 각종 자료와 정보를 수집한 바 있기 때문에 15일 전후를 D데이로 잡고 있었다.

금년은 다른 해보다 봄이 빨리 오는가? 모든 분위기가 ‘소리없는 아우성’처럼 출발을 강요하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TV 뉴스가 출발신호를 울려주었다. 광양에서 펼쳐진 무슨 행사의 배경화면을 보니 매화가 만개(滿開)해 있는 게 아닌가.

밤중에 부랴부랴 짐을 쌌고 다음날 김포공항에서 대한항공편 여수로 내려갔다. 3월 9일 오전. 여수에서 광양까지는 공항버스를 이용했다. 6천원.

광양읍 농협 정문 앞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하동행 버스를 기다렸으나 30분 가까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후 일정을 계산해 보니, 이렇게 시간을 낭비했다가는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런 경우야말로 ‘시간은 금이다’. 택시를 잡았다. 이번 여행의 주요 방문지이자 출발점이기도 한 ‘매화마을’로 향했다.

매화마을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홍쌍리 여사가 운영하는 ‘청매실 농원’. 그곳을 10리쯤 남겨 놓고 택시에서 내려 걸었다. 청매실 농원은 이미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주인 홍 여사는 더 유명하다. 모든 구성요소가 유명해질 수밖에 없도록 엮어져 있었다.

   
  청매실 농원은 이제 본격적인 관광농원. 추위 속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의 고상한 분위기를 즐기기에는 너무 야단스러웠다.  
전라도로 시집온 경상도 여인. 50년 세월을 처음에는 시아버지를 따라, 후에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직접 매화를 심고 가꾼 집념. 무엇보다도 부잣집 안방마님처럼 후덕하면서도 잘 생긴 미모의 주인공. 이제 70을 바라보게 된 긴 세월, 거친 일에 단련되어 고운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북더기가 되어버린 투박한 손.

이 ‘청매실 농원’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전남 광양시 다압면(多鴨面)의 매화마을. 그 중심부를 향해 걸어가면서 여러 가지 기대감으로 가슴이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과연 예상처럼 경치가 아름다울 것인가. 농원 관계자들, 특히 주인 홍쌍리 여사와 차라도 함께 마시면서 궁금한 점들을 충분히 물어볼 수 있는 형편이 될 것인가. 모든 사정이 뜻한 바와 같이 펼쳐진다면 매화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낼 요량으로 모텔까지 보아두었다.

드디어 청매실 농원. 입구가 언덕배기로 되어 있어 올라보니 조지훈의 ‘매화송’이 새겨진 시비(詩碑)가 제일 먼저 눈길을 끈다. 그리고는 이황, 박제가, 정약용, 노천명 등 수십 명 유명 시인들의 매화를 노래한 시비들이 끊임없이 세워져 있다. 주인의 품격이 느껴진다.

기분 좋은 건 그게 전부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대형 중장비가 길을 막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자연석들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 중. 조금 더 나아가자 주차장에 수많은 승용차와 버스들이 들어차 있는데 주차공간은 점점 줄어가고 있었고, 거기서 쏟아져 나온 인파들이 소음을 빚어내며 분위기를 어지럽혔다.

아니, 주말도 아닌 월요일이고 매화꽃 자체도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벌써부터 북새통이람!

농원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당초에 세트장으로 지어진 듯싶은 초가집에서 TV 드라마 ‘일지매’의 촬영이 한창이었다. 보고 싶지 않아도 그 자리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촬영에 방해된다고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구경꾼은 일체의 잡담을 할 수 없었으며 핸드폰도 진동으로 조정해야 했고 개별적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라 했다.

반대편 언덕으로 이동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주변의 매화나무들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아! 이래서 전체적인 그림이 다소 엉성해 보였구나. 농원 안의 매화들은 65% 정도밖에 피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곳의 지대가 좀 높은 편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이제 농원 안에서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은 주인 홍쌍리 여사와 만나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것. 매실을 소재로 만든 각종 상품을 파는 매장의 직원들에게 홍 여사의 소재를 물었으나 막연하고 시큰둥한 대답 뿐.

그렇다면 이곳을 떠나 ‘화개장터’로 이동해야 한다. 걸으면서 몇 사람에게 “화개장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20km. 밤중에나 도착하겠구나. 그래도 가야지. 매화를 벗 삼아 걸으며.


최창신
서울신문 기자 출신. 체육부(현 문화관광체육부) 대변인을 거쳐 체육과학국장·체육지도국장으로 서울올림픽 대비 종합전략을 기획, 한국의 4위 달성에 기여했다. 축구협회 수석부회장, 문화체육부 차관보, 2002월드컵조직위 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태권도신문사 상임고문, 한국유소년축구회 회장, 프로축구단 서울유나이티드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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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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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두 (211.XXX.XXX.194)
가보고 싶은 곳을 사장님의 글로서 대신 상상해 봅니다.
글을 읽는데 상상하느라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것 같은데, 상상하는 것만큼
기분도 좋아집니다.
사장님 화이팅.. 2편으로 넘어가서 다시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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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9 10: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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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99)
일년동안 매화 피기를 기다려 단숨에 여장을 꾸릴 수 있다면,..... 세상의 잡다한 인연을 접고 매화향을 찾아 떠날 수 있는 그 여정에 동행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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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27 20:3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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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현 (211.XXX.XXX.22)
고생많으셨겠네요...
여행을 통해 세상을 깊게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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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17: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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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11.XXX.XXX.199)
지적해 주신 대로 자유칼럼에서 보고 계신 이 칼럼만 존대어로 쓰여 있지 않습니다. 기행문을 그렇게 쓰기가 다소 부자연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께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필자와 상의해서 고치도록 해 보겠습니다. 더 많은 분들의 의견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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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13: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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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 (211.XXX.XXX.24)
자유칼럼의 모든 글은 존대를 해서 좋았는데 갑자기 반말을 사용하는 글을 읽으니 기분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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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08 09:4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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