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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힘’ 보여 주기
임철순 2009년 06월 02일 (화) 07:24:53
최근 대만을 다녀왔습니다.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취임 1년을 맞은 대만은 우리와 비슷한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특히 야당 민진당은 중국과의 양안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국민당 정부에 맞서 ‘反傾中 護臺灣(반경중 호대만)’, 중국에 기우는 것에 반대하면서 대만을 지키자는 구호를 앞세워 반정부 활동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과의 관계가 뒷걸음질하고 있는 우리와 비교하면 여야의 입장이 정 반대지만, 대립이 첨예한 것만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대만의 여야는 두 가지 큰 국제행사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하나는 9월 5~15일 타이베이(臺北)에서 열리는 제21회 농아인 올림픽대회(聽障奧運在臺北), 다른 하나는 2010년 11월 6일부터 이듬해 4월 25일까지 열리는 국제 화훼박람회입니다. 특히 화훼박람회는 우리나라라면 꽃이 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11월에 시작돼 6개월 가까이 계속되는 대규모 행사입니다.

   
 
  타이베이 농아인올림픽의 엠블렘과 마스코트.  
 
두 가지 행사 중에서 더 관심을 끄는 것은 농아인 올림픽(Deaflympics)입니다. 비장애인들의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는 하계ㆍ동계 올림픽, 언제나 하계 올림픽에 이어 열리는 장애인올림픽(Paralympics), 유니버시아드 등과 함께 IOC가 주관하는 국제 스포츠행사입니다.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열렸으나 1939~1949년에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중단됐습니다.

20개 종목에 81개국 3,900여명의 선수단이 출전하는 타이베이대회는 대회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크며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한국은 이번에 9개 종목 90여명의 선수단이 출전하는데, 2005년 호주 멜버른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종합 7위, 대만은 종합 6위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1986, 88년의 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공을 들였듯이 대만인들은 농아인올림픽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차이니스 타이페이’라는 이름으로 유니버시아드나 아시안게임 동아시안게임 등 어느 것 한 가지도 유치하지 못했던 대만은 국민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북돋우기 위해 대회 유치를 결정했고, 2003년 2월 스웨덴 순스발에서 열린 ICSD(국제농아인스포츠연맹) 총회에서 그리스 아테네를 52대 32로 젖히고 개최권을 따냈습니다. 그리스는 2004년 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 개최국이어서 훨씬 유리해 보였는데도 대만은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딛고 일어섰습니다. 2000년에 아태 농아인경기대회를 개최한 경험과 실적이 좋은 평가를 받은 셈입니다.

우리는 이미 20여년 전에 경험한 바 있지만, 이렇게 큰 국제 스포츠행사를 따낸 대만인들의 감격과 각오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2만여 명을 수용하는 주경기장은 6월 중 완공될 예정입니다. 대회의 엠블렘은 臺北의 北자와 사람 그리고 귀, 이 세 가지를 모아 형상화했습니다. 마스코트는 대만에 서식하는 8종의 개구리 중에서 가장 작은 청개구리입니다. 작지만 튀어오르는 힘이 놀라운 이 마스코트에 도약을 기약하는 대만사람들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조직위는 이 대회를 Thoughtful Games(사려 깊은 경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경기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려면 모두가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20명에 가까운 해외 강사들을 초청해 국제적 사인언어를 배우고, 도시 전체를 청각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다닐 수 있게 만들어 가는 중입니다. 청룽(成龍)을 비롯한 유명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위촉해 無聲的力量, 이른바 침묵의 힘을 세계에 보여주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내년 화훼박람회와 연결 지어 대회를 준비 중인 대만인들은 다음엔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농아인올림픽과 같은 대회를 개최하려 하지 않을까요? 그런 거 해봐야 생색도 나지 않고 돈도 안 되기 때문일까요? 한국은 이미 올림픽은 물론 월드컵도 치른 나라이며 2018년이든 2022년이든 또 한 번 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입니다. 더욱이 이제는 국가 차원을 지나 지자체 별로 경쟁하듯이 각종 세계 스포츠대회를 유치하고 있고, 최근에도 광주가 2015유니버시아드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스포츠행사는 아니지만, 2012년 9월 인천에서는 ERA세계장애대회가 열립니다. 아태경제사회위원회(UNESCAP) 제2차 아태장애인10년 최종평가회의, 세계재활대회(RI대회), 아태장애포럼 컨퍼런스(Asia Pacific Disability Forum) 등 3개 대회를 통칭하는 이 행사에는 100여개국의 민간ㆍ정부 인사 3,000여명이 참여한다고 합니다. 인천시는 이 대회를 유치함으로써 9, 10월 경 개최지가 결정되는 2014년 장애인 아시아경기대회의 유치 경쟁에서 유리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내가 농아인올림픽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이 대회를 통해 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배려하고 노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서울처럼 끔찍스러울 정도로 사람이 붐비고 주의와 주장이 들끓고 열이 많은 도시, 언제나 시끄럽고 소음과 구호로 넘치는 도시일수록 목소리를 낮추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려와 분별이 절실합니다. 우리는 데시벨을 낮추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서로 들어야 합니다. 농아인올림픽 개최는 도시의 품격과 시민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3년에 열리는 다음 대회의 개최지는 이미 그리스 아테네로 결정돼 있습니다. 아테네도 재수 끝에 대회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다다음 2017년 대회를 우리나라가, 아니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이든 유치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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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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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99.XXX.XXX.163)
어려운자 특히 장애를 가진자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은 숭고합니다.
그들을 위한 올림픽을 열 수 있도록 노력하였으면 합니다.
물론 정부나 기업체의 도움은 절대적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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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10: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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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머리쪽지매 (61.XXX.XXX.136)
대단히 그런 편으로 자화자찬하는 저인데 제가 가장 소중하다고 믿는 신념이나 주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과격하고 이성을 잃어버리기도 하여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ㅋ....임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과 달리 우리나라 국민은 장애인과 이방인에 대해 가히 세계적이라고 할 만큼 폐쇄적이거나 편견이 심합니다. 최근 상당히 계몽이 많이 되었으며 정부나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영화,드라마 등에서 국민의식 홍보에 더욱 노력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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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2 16:5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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