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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 『우리 헌법의 탄생』
김이경 2009년 08월 04일 (화) 08:23:52
요즘 들어 부쩍 법이 뉴스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사법부와 법조인이 한동안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더니 얼마 전부터는 개헌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제헌절 기념식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은 국회에 서둘러 개헌특별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헌법이 현실의 변화를 못 쫓아가서 국가 발전이 더뎌진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은 오늘날까지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한 해 앞서 신헌법을 제정한 일본 역시 개헌 없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60년 동안 9차례나 고치고도 모자라 다시 개정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애초에 엉터리 같은 법이라 고칠 게 많은 건지, 아니면 워낙 법을 중시하는 전문가들이 많아 그리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개정을 할수록 헌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그토록 여러 번 손질했으니 헌법의 수준도 그에 대한 지식도 손색이 없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권에선 툭하면 헌법을 문제 삼는데 정작 국민들은 헌법이 어떻게 되든 관심도 없습니다. 프랑스 인권선언이나 미국 독립선언에 대해선 잘 알면서도 우리 삶의 근간이 되는 헌법에 대해선 내용도 역사도 모르는 걸 당연시합니다.

어쩌면 이런 무관심이 오늘 같은 현실을 낳았는지도 모릅니다. 틈만 나면 개헌 이야기가 나오고 정파의 이해에 따라 헌법 고치길 예사로 아는 현실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현실을 바꾸자면 지금이라도 우리 헌법이 어떤 내용이며, 어떻게 만들어져서 지금 여기에 이르렀는지 공부하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마침 작은 문고판이지만 길잡이로 삼기에 손색이 없는 책도 있으니까요.

법학자 이영록이 쓴 『우리 헌법의 탄생』은 1948년 7월 17일 선포된 건국헌법의 제정과정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를 되돌아본 책입니다. 해방부터 정부 수립까지 격동의 3년사를 다룬 책들은 많지만, 이처럼 헌법에 초점을 맞춰 그 역사를 조명한 책은 드뭅니다. 더구나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지지 않고 최대한 역사적 실상에 다가가려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더 큰 가치를 갖습니다. 자, 그럼 이 책이 말해주는 헌법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가 문을 엽니다. 이른바 제헌국회가 시작된 것인데,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이 국회의 성격입니다. 헌법제정회의와 일반 국회의 역할이 뒤섞여 있었던 겁니다. 헌법제정회의는 1787년 미국이나 1791년 프랑스 제헌의회처럼 헌법 제정만을 위한 한시적 의회입니다. 2005년 미군정에서 독립정부를 수립한 이라크도 총선거로 제헌의회를 구성해 헌법안을 마련한 뒤 국민투표로 헌법을 확정하고, 이 법에 따라 총선을 실시해 의회를 구성했지요.

그런데 우리의 제헌국회는 한시적인 제헌의회가 아니었습니다. 헌법 제정을 한 뒤에도 입법기관으로서 계속 활동했던 겁니다. 헌법제정회의든 일반 국회든 어차피 국민이 뽑은 대표이긴 마찬가지인데 꼭 구분할 이유가 있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그러나 부정적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고 답합니다.

부정적 여파란, 제헌의원들이 헌법이 성립된 뒤에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게 되면서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당장의 당파적 이해를 고려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국회의원으로서의 정치적 입지와 당파의 정권 장악을 염두에 두고 만든 헌법이 백년대계를 책임질 수는 없을 터. 그런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통령제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헌법을 만들 당시 정부형태의 대세는 내각책임제였습니다. 헌법 초안을 만든 유진오도 한민당도, 또 중도 성향의 무소속 인사들도 모두 내각책임제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헌법에 명시된 권력형태는 대통령제였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대통령제를 하지 않으면 정부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승만의 엄포에 한민당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입니다. 정부 수립을 미루다가 좌파에 밀리고 정국주도권마저 놓칠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야합. 절차를 무시한 이 역사는 두고두고 우리의 발목을 잡습니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제를 둘러싼 정쟁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헌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원칙과 절차가 무시된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이 제3독회에서 문제되자 이승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조건[이익균점권]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하더라도 시행을 하자면 잘 안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5개월이나 6개월 안으로 근로대중부터 이것을 교정하자는 얘기가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회에서 대다수 헌법을 교정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러니 그것을 가지고 문제 삼을 것이 없이 그냥 두어도 괜찮은데…”

한마디로 정세가 시급하니 일단 통과부터 시키고 나중에 개정하자는 겁니다. 헌법을 제정하는 순간부터 개정을 생각했던 것인데, 그러고 보면 ‘개헌의 타성(惰性)’은 출발부터 배태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헌법 제정 과정에서 쟁점이 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대한민국이란 국호도 그 중 하나로, 한민당이 내세운 고려공화국과 치열한 논란을 벌인 끝에 결정되었지요. 또 한 가지, 인권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이 고문 금지 조항입니다. 현행 헌법 제12조 2항에는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건국헌법의 기초가 되었던 행정연구회와 유진오의 공동안(共同案)에도 고문과 잔인한 형벌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헌법기초위원회 심의과정에서 김준연을 비롯한 한민당계 의원들은 이 조항을 삭제하자고 주장합니다. 치안 유지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지요. 이들의 파상공세에 맞선 것은 무소속의 조봉암이었습니다. 수적 열세로 패배가 예견되는 상황에서 조봉암은 절규합니다.

“법률은 강자에게나 약자에게나 공평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 사후영장이란 것이 있을 수 없으며, 고문과 잔혹한 형벌은 당연히 금해야 할 것이다.… 이 천하가 언제나 너의 천하가 될 줄 아느냐!”

그러나 고문 금지 규정을 삭제하자는 수정안은 결국 한 표 차로 가결되고 맙니다. 저자의 말처럼, 헌법에 고문을 금지했다고 해서 현실에서 고문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법이 곧 현실은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제헌자들의 다수가 경우에 따라서는 고문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고문이 뿌리 깊게 온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런 토양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미국의 정치학자 헨더슨이 비꼬았듯이1), 불과 한 달 보름만에 만들어진 건국헌법에는 여러 가지 한계와 졸속의 흔적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탄생은 의미를 갖습니다. 무엇보다 입헌주의의 전통이 전혀 없던 나라에서 헌법을 직접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로운 일입니다.

더구나 건국헌법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정된 적 없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규정이 제1조 1항에 버젓이 실린 것은 참으로 놀랍고 뿌듯한 일입니다. 저자는 그럴 수 있었던 근거를 임시정부의 역사에서 찾습니다. 여러 독립운동 세력이 힘을 합해 만든 임시정부헌법이 있었기에 척박한 토양에서도 우리 힘으로 헌법을 기초하고 공화정에 대한 뚜렷한 지향을 담을 수 있었다는 거지요.

건국헌법에는 ‘민주공화국’이라는 선언이 결코 정치적 수사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조항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의무교육제, 근로자의 이익균점권, 농지는 농민이 소유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 등이 그것입니다. 이들은 당시 우리 사회에 팽배했던 평등의 열망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합니다.

출발부터 개정 운운할 만큼 졸속으로 제정된 헌법이지만, 좋든 나쁘든 거기에는 이처럼 당시의 시대정신이 반영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의식, 입헌주의 정신이 정치적 원칙이자 지향으로서 분명히 선언되어 있었습니다.

내각제냐 대통령제냐, 대통령 단임제냐 중임제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리의 시대정신이고 지향입니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헌법을 고치는 정신과는 거리가 아주 먼, 백년 앞을 내다보는 정신이지요. 개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먼저 이 정신부터 똑바로 차려야 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는 것도 좋겠군요. 그나저나 헌법이 총 몇 조(條)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아시지요?2)

1)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을 지낸 그레고리 헨더슨은 한국 역사와 문화에 정통했는데, 특히 그가 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Korea: Politics of the Vortex』는 한국 정치사를 다룬 고전적인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조선 왕조가 명나라의 제도에 적응하는 데 수십 년 내지 수백 년이 걸린 것에 비해, 현대 한국의 국회가 서구식 입헌민주주의 제도의 닻을 올리는 데는 겨우 몇 주일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회프락치 사건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박정희 정권과도 불편한 관계를 빚었다.

2) 1987년에 개정된 현재의 헌법은 전문과 본문 총 10장 130조, 부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헌법을 읽고 싶다면 법학자 정종섭과 사진작가 김중만이 함께 만든 『대한민국 헌법을 읽자』라는 책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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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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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218.XXX.XXX.111)
우리나라의 최근역사에서 개헌경험은 우리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고 생각됩니다. 유신개헌과 80년군사쿠데타에 의한 개헌처럼 정권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개헌은 어김없이 국민인권 억압과 민주주의의 위축을 낳았는데 반해, 1987년 민중들의 개헌투쟁으로 이뤄진 직선제개헌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확장을 가져왔다는 점이겠지요. 최근 등장하고 있는 개헌론이 문제가 되는 것은 현재의 헌법에서 보장된 민주와 인권조차 경찰력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들이 외면하는 가운데 정권의 주변에서 국면전환용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낯뜨거운 줄 모르는 자들의 개헌논의!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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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04 15: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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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제 (203.XXX.XXX.25)
필자가 인용한 문헌은 깊이 있는 연구나 객관적인 논의가 아쉬운 책들입니다. 그레고리 핸더슨만해도 그 책은 한국정치에 대한 한낱 소개서 수준이며 자신의 생각을 담은 일종의 수상록입니다. 심지어 우리 헌법제정에서의 헌법제정의회와 같은 성격을 바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객관적이라는 인식은 당시의 정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주장일 뿐입니다. 이런 문제는 정파를 떠나 괭장히 깊이 있는 연구가 전제되어야할 분야이기 때문에 그냥 책 읽고 논의하기에는 좀 무거운 문제입니다. 결국은 기존의 가벼운 논의에 또 다른 논의만 더할 뿐, 담론의 생산성과는 거리가 있게 됩니다.
답변달기
2009-08-04 10: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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