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검색어 : 자유칼럼, 에세이
> 연재칼럼 | 신아연 공감
     
나의 ‘C’를 찾아서
신아연 2009년 08월 24일 (월) 09:18:38
최근 한국의 ‘열린치과의사회’라는 봉사 단체에서 10년간의 활동상을 담은 회보를 묶어 영인본을 냈습니다. 열린치과의사회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1999년에 치과의사들이 만든 봉사단체입니다. 이 단체는 그간 북한과 중국 동포를 위한 봉사활동을 비롯하여 노숙자 무료틀니 사업, 한국내 외국인 근로자 치료 및 몽골등 해외에도 무료진료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단체가 발행하는 회보에 5년째 글을 쓰고 있는 인연으로 제게도 얼마 전 그 두터운 책자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국어대사전 만한 두께의 책자를 바다건너 호주까지 보내준 정성에 감복하며 한 장씩 넘겨 보다 이런 글을 발견했습니다.

“이나 빼고 틀니나 해넣으며 안정된 수입으로 인생을 엔조이하는 존재라면 그는 의사가 아니다. 그 이전에 자신을 믿고 의지하려는 이웃의 상처 받은 마음을 감싸주는 존재여야 한다. 한때의 인기사극 <허준>에서 강조되는 ‘긍휼히 여김’은 옛 의원들만이 가져야 할 이웃에 대한 감상주의적인 동정심이 아닌,모든 지식인들이 시대와 사회에, 그리고 어려운 이웃에 대하여 함께 나누는 아픔과 고통에 대한 동참을 의미한다. 4백년 전 그 옛사람들도 가졌던 이웃사랑이 많은 역사와 발전이 이루어진 현대에 그만하지 못하다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평등하게 태어난 모든 사람 가운데, 선택되어 남들보다 더 많은 기회와 교육이 주어진 데 대하여 우리 치과의사라는 특정 그룹은 늘 처지를 감사하며 남달리 더 받아 누린 기회를 어려운 이웃과 나누려는 당연한 양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치과의사로서 자신들을 우리사회의 가진 자로 인식하되 이웃과의 나눔에 대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당연한 듯 소박한 진술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이후 알 수 없는 힘에 끌리듯 이 방 저 방 두터운 책자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틈틈이 의료인들의 봉사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마치 고질화된 두통처럼 주기성을 가지고 삶의 권태감과 무력감이 찾아오곤 합니다. 쇼핑센터를 어슬렁거리거나 맛있는 것을 먹고, 자극성있는 재미거리라도 찾으면 어느 정도 풀리는 일상의 스트레스와는 다른, 한 번씩 사는 것 자체가 싫증이 나버리는 증상입니다. 살아 있다는 전제 하에 할 수 있는 것이 다 시큰둥하게 여겨져서 마치 쏟아지는 비를 피할 생각도 않고 우두망찰 서 있을 때처럼 갑자기 살맛이 없어지는 겁니다.

경상도 말로 ‘포시랍다’는 소리 듣기에 딱 좋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한 내일’이라는 말로 ‘저의 살아 있음의 사치’를 따끔하게 나무라고 싶은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당장 과식으로 배탈이 난 사람더러 배곯는 사람 생각해서 참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사람이 무슨 기계도 아니고, 개, 돼지도 아닌데 등 따숩고 배부른 것만 가지고 어떻게 평생이 만족스럽겠습니까. 사람이니까 허전하고 사람이니까 공허하고 사람이니까 권태로운 게지요. 몰라서 그렇지 개, 돼진들 실존적 고뇌가 없으리라고 뉘라서 장담할 수 있을까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아는 게 아닐진대, 지금껏 단 한 번도 부귀영화를 누려보지 않았음에도 부귀영화가 사는 맛을 되찾아 주지는 않을 게 뻔합니다. 부자들이나 유명하고 잘난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당장 답이 나올 게 아닙니까. 부귀영화는커녕 오싹한 ‘괴귀영화’가 순간적으로 정신을 차리는 데는 차라리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은 권태를 느끼고 살맛을 자주 잃는 것은 반대로 삶의 애착과 욕심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압니다.

만날 먹는 밥, 김치나 있으면 한 끼 때운다는 사람하고 식도락의 사람을 견줄 수 없듯이, ‘사는 게 다 그렇지, 똑별난 게 있나’ 하고 무감각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권태감이나 공허감도 그다지 자주 찾아들지 않을 것입니다. 미각을 돋우어 매끼 맛있는 것을 찾고, 어쩌다 미식을 놓쳤을 때 애석하기 그지없어 하며 다음 기회를 벼르는 식도락가처럼, 매 순간 살아 있음을 오감과 내성을 동원하여 육적, 혼적, 영적으로 민감하게 느끼며 늘 깨어 활동하는 파수꾼을 세워 삶의 예민성을 다지는 사람일수록 그 반작용으로 권태와 공허라는 어둡고 깊은 골을 보다 자주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삶의 애착과 욕심이 많은 나,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해답을 찾는다면 불쑥불쑥 찾아드는 공허와 권태가 해결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부쩍 이런 번민을 하고 있던 차라 한 의료단체의 봉사활동상에 저도 모르게 매료되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은 ‘B (Birth) 와 D(Death)사이에 C(Choice)가 있는 것’이라고 하지요. 우리에게 주체적으로 주어진 것은 C뿐이며, 그 C가 우리 인생의 내용과 질을 결정할 것입니다. 봉사하는 치과의사들을 통해 나의 ‘C’도 지금껏 받아누린 것을 이웃과 사회에 되돌리는 데 초점이 맞춰지기를, 그래서 찾고 있는 여생의 해답이 얻어지기를 진정 소망해 봅니다.

   




신 아연 :ayounshin@hotmail.com
신 아연은 1963년 대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를 나왔다.
16년째 호주에 살면서 <호주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국의 신문, 잡지, 인터넷 사이트, 방송 등에 호주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민 생활 칼럼집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과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공저 <자식으로 산다는 것> 이 있다.

ⓒ 자유칼럼(http://www.freecolum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칼럼의견쓰기(3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marius (121.XXX.XXX.101)
좋은 글을 올리시느라 수고가 많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기쁘시겠다고 해야할지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좋은 능력을 갖고 계시니니까 일종의 고통 같은 것을 느끼게 되시니 이것 또한 실존적 고뇌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이 아직도 내게는 실감있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 행동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이 훌륭한 일을 했을 때 그분을 억수로 부러워하는 마음은 큽니다. 언제 그것이 역전될지 그 성숙의 시기를 기다리고는 있습니다만 마냥 기다릴수만도 없고 그러던차에 이번 글을 읽고 다시 마음을 추스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답변달기
2009-08-27 10:49:33
0 0
나로호 (211.XXX.XXX.56)
'봉사'는 좋은데... 영인본이라니... 스스로 만드는 선행의 증거?
글쎄... 좀... 그렇네요.
답변달기
2009-08-27 09:04:45
0 0
다비 (99.XXX.XXX.163)
좋은 글에 잠시 매료되었습니다.
삶의 권태나 공허함은 어쩌면 생각이 깊을 수록 더 심할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움직이는 삶, 무엇인지 봉사하는 삶,
사랑하는 삶,
이런 속에서 질적인 여생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답변달기
2009-08-27 03:38:44
0 0

다음에 해당하는 게시물 댓글 등은 회원의 사전 동의 없이 임시게시 중단, 수정, 삭제, 이동 또는 등록 거부 등 관련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운영원칙]

  • 욕설 및 비방, 인신공격으로 불쾌감 및 모욕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 유출과 관련된 글
  • 다른 회원 또는 제3자의 사생활 침해 및 개인정보 유출
  • 공공질서 및 미풍양속에 위반되는 내용을 유포하거나 링크하는 경우
  • 불법복제 또는 해킹을 조장하는 내용
  • 영리 목적의 광고나 사이트 홍보
  • 범죄와 결부된다고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내용
  • 지역감정이나 파벌 조성, 일방적 종교 홍보
  • 기타 관계 법령에 위배된다고 판단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