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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쌀농사!
최병상 2009년 09월 11일 (금) 00:45:58
요즈음 볏논을 바라보면 근심이 깊어갑니다. 너무 잘 자란 벼가 영글어가는 이삭의 무게 때문에 쓰러지기 직전이어서 그야말로 풍전등화입니다. 비 먹은 구름이 나타나지는 않는지, 바람이 불지는 않는지, 불안한 나날입니다. 웃자란 벼에 비가 내리고 바람까지 불면 영락없이 쓰러져 지금까지의 고생이 허사가 돼버릴 겁니다.

비옥한 저수지 흙을 준설하여 복토했으니 키 작은 종자를 선택하고 비료를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 키 큰 종자에 약간의 비료까지 주었으니 웃자랄 수밖에요. 이렇게 잘못해놓고 비바람을 막아달라고 하늘을 우러러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나 읊조리는 제 자신을 미워하며, 질퍽한 복토 흙 때문에 이앙기를 사용할 수 없어 손 모내기에 동원된 아내의 눈치를 살핍니다.

그런데, 지난 8월 31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연한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쌀 관세화는 농민들이 중심이 돼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위원회에서 결론을 내면 (정부는) 따라서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농민들의 생사가 걸린 쌀 수입개방을 농민들로 구성된 무슨 위원회의 결론을 따르겠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가뜩이나 떨어진 쌀값 때문에, 팔리지도 않는 쌀 때문에,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을 바라봐도 흥이 나질 않는데 위로하고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허수아비 위원회 핑계를 대며 2014년까지 유예된 쌀 수입을 조기에 개방하겠다니요.

작년 가을에 14만 8천원(직불금이 포함된 정부수매가) 하던 쌀(80킬로그램)이 지금은 1만원이나 떨어져 13만 8천원에 불과합니다. 값싼 수입쌀이 시중에 과다하게 유통되기 때문입니다. 2001년도에 18만원을 호가하던 쌀이 8년이 지난 오늘 13만 원대로 떨어졌으니 쌀농사를 짓지 말라는 경고(?)인 것 같습니다. 농자재 값도 떨어졌다면 불평할 이유가 없지만 당시 20킬로그램 1포대에 5천3백 원 하던 요소비료는 2만원 넘게 올랐다가 지금은 1만2,560원으로 내렸지만 그때보다는 두 배 넘게 오른 값입니다. 쌀값도 두 배 올려 36만 원 쯤 받아야 할까요?

그렇다면 쌀농사를 짓지 말지 왜 지으면서 불평하느냐고요? 까짓 쌀농사 10조원 남짓 밖에 안 되니까 전자제품, 자동차 팔아서 값싼 외국쌀 사오면 된다고요? 그럴까요?

아시아적 몬순기후대에 속한 우리나라는 비가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내리는데 논에 가두지 않고 곧바로 강으로 흘러들면 필연적으로 범람하여 홍수피해를 겪게 됩니다. 논둑을 막아 쌀농사를 짓기 때문에 6개 다목적댐의 최대저수량 15억 톤보다 6억 톤이 많은 21억 톤이 갇혀 홍수를 예방하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면 14조 6천억 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논에 물을 가둠으로써 수질을 정화하고 연간 160억 톤의 지하수를 공급해주는데, 이는 농업용 저수지 총용량 23억 톤보다 7배나 많은 양으로 국민전체가 사용하는 수돗물의 78%에 해당됩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3조7천억 원입니다. 벼가 자라면서 탄소동화작용을 하여 584만 톤의 탄소를 마시고 430만 톤의 산소를 내뿜는데, 이 대기정화 기능을 돈으로 환산하면 4조 2천억 원이나 됩니다. 이외에도 논의 기능은 고향 보존, 조수 보호, 전통문화 보존, 지역방위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쌀 총생산액보다 2배나 많은 23조원의 경제외적 가치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여든 여덟 번의 손길을 거쳐 생산되는 쌀은 지구상 최고의 먹을거리입니다. 우리 몸이 활동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총량의 50~60%를 차지할 뿐 아니라 비타민 A와 C를 제외한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A와 C는 김치만 먹어도 보완이 되니 고기 없이 쌀밥과 김치만 먹어도 우리의 식탁은 완벽했습니다. 2004년 3월 일본 도쿄 해양대학원연구팀이 발표한 실험이 있습니다. 쥐 두 마리에게 각각 밀가루와 쌀을 먹이고 체중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추를 달아 1주일에 한 번씩 헤엄치게 했더니, 처음 1, 2주는 별 차이가 없다가 3주째는 쌀 먹은 쥐가 약간 우세했고 4주째는 쌀 먹은 쥐가 밀가루 먹은 쥐보다 두 배나 더 오래 헤엄을 쳤다고 합니다.

논은 최고의 농지로서 염류집적이 되지 않는 영원한 식량창고입니다. 낟알이 최고의 먹을거리라면 부산물인 볏짚 또한 유용했습니다. 추수가 끝나면 볏짚으로 마람을 엮어 초가지붕을 이어 비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막았고 울타리를 만들어 이웃과 소통하면서도 적당히 단절을 꾀했습니다. 새끼를 꼬아 그네를 만들고, 짐승부터 나뭇단, 심지어 돌아가신 분들의 손발을 묶는 데까지 사용했습니다. 가마니와 망태기를 짜서 곡식을 담았고, 멍석으로 곡식을 말리거나 여름밤 마당에 깔고 앉아 은하수를 감상했습니다.

창고가 없던 시절, 마당에 볏짚과 새끼만으로 ‘두대통’이라는 임시 창고를 만들어 이듬해까지 벼를 저장하기도 했고, 짚신을 삼아 신으면 무좀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우장을 만들어 우산 대신 쓰고, 장날 팔러가는 달걀을 포장하는 포장재로 썼습니다. 겨울엔 유익한 소 먹이였고 구들을 덥히고 밥을 짓는 땔감이었습니다. 타고 남은 재로는 콩나물을 기르고 채소밭의 천연 약재로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쌀농사 하나로 생활전반을 해결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경제적 가치만 따져 취사선택하는 선택산업이 아니라 필수산업입니다. 국방, 치안, 안보보다 더 중요한 식량안보를 위해서도 기필코 쌀농사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쌀 시장을 조기에 개방해서 세계 농민들과 경쟁을 하라고 합니다. 미국이나 중국 농민들처럼 농지를 평당 몇 백 원, 몇 천원에 공급해주고 별의별 혜택을 다 베풀면서 경쟁하라면 모르지만 지금 이런 상태에서 경쟁하라는 건 어린애더러 프로레슬러와 경기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8,15해방 직후 222만 6천 정보이던 농지가 2008년 말 현재 175만8,795 정보로 줄었고, 그 중 논은 104만5991정보에 지나지 않아 걱정입니다. 식량자급률 27~30%를 목표(?)로 잡아도 최소 165만 정보의 농지가 있어야 하는데 해마다 1만8,088정보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2004년도 식량자급률이 82%인 북한도 굶주림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식량자급률 23%인 한국이 굶주리지 않는 건 부족분을 수입하기 때문입니다. 국민 1인당 연간소비량은 이제 80킬로그램도 되지 않지만 80킬로그램으로 계산하면 (가마당 16만원으로 가정하고) 한 달 쌀값은 1만3,300원, 하루 쌀값은 444원, 한 끼 쌀값은 148원에 불과합니다. 한 끼 쌀값이 자판기 커피보다 쌉니다. 지금 쌀값은 14만원도 되지 않습니다. 1가마에 30만원 한다면 한 달 쌀값은 2만5천원, 하루에 833원, 한 끼에 278원입니다.

쌀값이 물가를 주도하고, 쌀값 때문에 도시 근로자들 허리가 휩니까? 그렇다면 3만 원짜리 수입쌀을 사십시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300만원을 주고도 쌀을 구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입니다. 쌀농사가 생사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소비자들, 현명한 국민이 구원투수로 나서 주십시오! 황금 들판을 바라보며 신명 나도록 희망보따리를 풀어 주십시오!



   최 병상씨는 한국기독교농민회 총연합회 사무국장과 3대 지방의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고향인 전남 무안군 몽탄면 학산리에서 쌀농사를 하며 꿀벌을 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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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견쓰기(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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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상 (220.XXX.XXX.111)
윤옥님,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쌀도 최고의 먹을거리지만 부산물인 짚의 다양한 용도를 보십시오!
그래서 60년대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은 '오~원더플! 한국은 짚문화에요~" 하며 탄성을 질렀답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 쌀농사!! 모두 나서서 지켜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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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4 02: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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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옥 (210.XXX.XXX.180)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저도 우리나라 쌀 농사를 어떻게든 지원하고 싶어졌습니다.
말씀 하신대로 우리 국민이 우리 쌀 농사에 애정을 가지고 적극 지원해서 적게나마 자급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함은 당연하고 그럼으로서 자연 재해를 막는데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현명한 국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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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1 23: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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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211.XXX.XXX.129)
제가 이제사 본 것인가요? 이게 첫칼럼이신가요? 칼럼니스트로 출발을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제가 팬이 되어 잘 쓰나 감시(! ㅎㅎ) 해야겠습니다.
답변달기
2009-09-11 10:4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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